영지주의와 신약성서(Gnosticism)
1. 들어가는 말
요즘과 같이 이단에 대해 시끄러운 때는 없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자신이 그리스도라 칭하는 자들이 일어나고, 교계에서는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자신의 것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생기면 여지없이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조차도,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이단이었다. 나는 이번 리포트를 쓰면서 이단의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영지주의를 통해서 과연 이단이라 정죄되었던 영지주의는 어떤 것이며, 그들의 주장은 무엇이었고, 신약성서는 영지주의를 통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알아보겠다. 과연 영지주의는 무엇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는가? 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그리고 이러한 영지주의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신약성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느냐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겠다.
2. 나그함마디, 세상에 나오다
1945년 12월 이집트 남부 지방의 한 농부가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을 이루어냈다. 이 문헌은 골동품상들의 손을 거쳐 암시장에 거래되다 곧 이집트 정부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집트 당국은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가족 장정된 13권의 코덱스 중 한 권을 사들이고 열 권 반 분량을 압수하는 데 성공하여 이를 카이로 콥트 박물관으로 보냈다. 그러나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다섯 편의 글이 담긴 마지막 13번째 코덱스는 원본 대부분이 해외로 밀반출되어 미국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훗날 마호메트 알 리가 문서의 일부를 태우거나 내버려 없앴음을 인정하였으나, 남아 있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초기 기독교 관련 문헌이 52편인데, 그중에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 복음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마복음서』와 『빌립복음서』 외에도 『진리복음서』, 그리고 “위대한 영의 성서”라 불리는 『이집트 복음서』가 있다. 다른 문서 묶음에는 『야고보서외경』, 『바울 묵시록』, 『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서한』, 『베드로 묵시록』 등 예수의 제자들이 썼다는 글이 들어 있다. 나그함마디 문헌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그러했지만 발견 이래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도 그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여러 연구 끝에 나그함마디는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3. 영지주의 정의
영지주의에 있어서 영지(Gnosis)란 본래 헬라어로 “지식” 또는 “인식(Erkenntnis)”을 의미하는 말이며, 이 말은 신약 성서에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그노시스란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이 은밀히 계시되는 신적인 매우 깊은 의미의 인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노시스 위에 그 객관화로서 형성된 종교 사상을 영지주의라고 부른다. 영지주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이레네우스에서 하르낙에 이르기까지 영지주의를 기독교 이단으로 보았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이들은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의 더러운 물에 신앙이 오염된 결과”라고 보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과정에서는 다른 견해가 유행했는데, 이 견해는 라이첸스타인, 부세트, 불트만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주장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영지주의는 단지 기독교로부터 이탈이 아니고 기독교 신앙의 라이벌과 경쟁자로서 서방에 침입한 고대 동양 종교의 재발과 부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정의에 따르고 있다.
4. 영지주의의 기원
영지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현대에 주로 4가지를 설명한다. 1) 헬라 철학 2)동양 종교 3)기독교 4)이단적인 유대교로부터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4가지 요소가 영지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나 상호 관련성 때문에 그 정확한 기원은 찾기 어렵다. 또한 영지주의는 어떤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따라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약시대를 불문하고 지중해 연안 여러 지역, 인도와 이란 세계, 또는 중국에 까지도 인정할 수 있는 세계적인 종교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고전적인 종교 현상을 기독교 영지주의와 구별하여 원영지주의(PROTO-GNOSTICISM)이라고 부른다. 원영지주의의 일반적인 기원은 종교사적으로 끌어내어 정확할 수는 없다. 다만 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기원은 기독교 이전설과 기독교 이후 발생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완전히 드러난 것은 트라쟌 황제 때 안디옥에서 가르친 사투니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영지주의의 두 기원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독교 이후의 발생설로서, 기독교 이후 영지주의 기원설을 가장 활발하게 주장한 학자는 시몬느 페트레멘트이다. 이 여류학자는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기생충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또한 영지주의의 비 기독교적 다양성은 기독교의 점진적인 이교화의 결과되었고 그것이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다고 보았다. 시몬느 페트레멘트의 입장에 서면 영지주의가 이집트, 이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되었던 것이 아니고 이러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에서 원영지주의 발달은 증명할 수 없고 다양한 지역적인 요소들이 있을 뿐이다. 밀레 페트레멘트는 영지주의와 동시대의 사람들인 기독교 교부들이 영지주의는 기독교 이후의 현상이었다는 견해를 갖는 것은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 문헌을 단 하나도 갖고 있지 않는 현재를 설명하고 이것은 영지주의가 점차로 1세기에 발전되었고 제2세기까지도 전성기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기독교 이전의 발생설로, 전통에 의해 오랫동안 받아 들여진 기독교 이후 발생설에 반대하여 안즈는 1897년에 영지주의 기독교 이전 기원설을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이 견해는 종교사학파의 구성원에 의하여 널리 확대되었다. 두 사람의 탁월한 대변인은 헬라적 유대주의 현상으로 기독교를 연구하는 부세트이고 헬레니즘에 있어서 신비주의를 연구하여 영지주의 기원을 이란과 만데안 전통에서 추적하는 철학자 라이첸스타인이다. 부세트교부들에 의해 보고된 그노시스의 교훈들을 헬라 철학에 의한 비교적 오래된 동양 신화의 변형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노시스의 구원자의 이교적 증거로서 필로, 헤르케틱문학과 갈대안 신학을 인용한다. 특히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전통을 강조한다. 라이첸스타인은 그의 처음 중요한 작품 포이만드레스에서 원인간에 대한 그노시스 신화를 기독교 이전 기원으로 설명한다. 그는 헤르메틱 소책자인 포이만드레스에서 원인간 교리는 기독교 이전에 있었으며, 이 소 책자는 가장 오래된 그노시스 문헌이라고 한다.
포이만드레스에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타락하고, 구원하는 계시가 주어지고, 다시 천체계 영역으로 승귀 한다. 리츠바르스키는 만데안의 기독교 이전 기원을 믿었다. 부세트, 리츠바르스키, 라이첸스타인의 연구로부터 불트만은 구원자 신화가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헬라주의 시대보다 오래전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1950-1960년에는 불트만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영향 아래 바울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되었다. 그들은 보른캄, 하엔첼, 쉬미롱등이다.
5. 영지주의의 사상
영지주의의 주요 사상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이원론으로, 한스 요나스는 영지주의 이론을 ‘이원론’이라고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이 이론으로부터 하나님과 세계, 인간과 세게와의 관계를 다룬다. 신은 절대적으로 우월한 자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우주의 본질과 다르다. 신은 창조 하지도 않았고 통치하지도 아니하였다. 세상은 어두움의 영역이다. 세상은 하위의 세력들의 작품이다. 이 하위의 세력들은 비록 신으로부터 나왔으나 참신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신에 대한 지식을 방해한다. 이러한 하위 세력들 곧 아르곤들은 영지주의의 사색의 중요한 주제이다. 초월자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감추어져 있고 자연적인 계시와 조명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원론에는 유대교적인 형태와 이방 종교적 형태가 있다. 그 첫째가 현상 세계를 전적으로 악한 것으로 보는 관념이다. 즉 이데아의 세계와 보이는 현상 세계를 대조시킨 플라톤 이원론이다. 그다음 하나는 페르샤의 이원론 개념이다. 즉 한쪽을 인간이 항상 돌아가려하는 선한 세계로 보고 다른 한 쪽을 인간이 갇혀 있는 전적으로 악한 세계로 보는 관념으로 해석하여 부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지주의적 이원론은 신화로서 그 기본 형태를 묘사하고 있다. 즉 빛의 세계와 어두움의 한 인간이 창조되지만 빛의 세계로부터 받은 영은 어두움의 세계에 속한 육체 속에 감금되어 그 속에서 유하게 되었다. 인간의 영적 존재는 이 세상 즉 어두움의 세계에 대해 이질적인 존재이며 이 이질적인 생명은 존재로서 다양하게 명령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적 이원론은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원론이다.
둘째는 구원관으로, 구원은 보이는 세계와 그 통치자인 혹성계의 성령에서 구속된 상대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유를 얻는 길은 영적 실체의 참된 세계와의 합일을 가져다주는 지식으로 보았다. 이들은 인간을 세계급으로 분류하며 영적 계급, 보통 교인들로 구성된 정신적인 계급이며, 셋째는 물질적 계급으로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이 구원의 지식은 완전한 자에게 주어지며 영적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소수인들에게만 그 지식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 가능한 영적인 인간과 사상의 전수가 불가능한 물질적 인간으로 인간을 구분하였으나 후기 영지주의 특히 발렌티누스 학파는 이에 한 부류를 더 첨가하여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영적 인간과 구원이 가능한 정신적 인간과 구원의 가망이 없는 물질적 인간으로 삼분하였다. 첫째 계급에 속한 자들만이 보다 높은 지식을 가질 수 있으며, 최고의 축복을 받는다. 둘째 계급은 신앙과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있으나 보다 낮은 축복을 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적 구속자 신화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배경으로 갖는다. 즉 물질세계에 감금된 인간의 신적인 본래의 자아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신적 세계로부터 그노시스가 전수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 그노시스를 전주 받으므로 자기의 참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자기가 신적인 존재임을 알게 될 때 구원의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암흑의 물질로부터의 해방과 최고신으로의 복귀를 말한다.
셋째는 신관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신을 여러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자존하는 지고의 존재는 제1 원리로써 그들이 비토스라고 부르는 지고신이다. 지고신을 정점으로 30여 개에 달하는 영적인 광명계의 서열 체계를 수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순수 무구한 지고신은 악한 물질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세계는 악하며 이 보이는 세계의 창조주와 통치자가 되는 에이온은 높고 선한 신이 아니라 열등 불완전한 하위신 데미우르고스로서 유대인들이 섬긴 하나님 야훼라는 것이다. 세계와 인간을 창조한 에이온은 최하위신 데미우르고스로서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중간적 입장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되었으며 이 하위신은 인간을 구속할 계획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최고의 에이온이 완전한 해탈을 확보해 줄 구속자로서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데 그 구속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노스틱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최고의 에이온으로서 높이 평가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그 이유는 절대적 존재는 유한한 존재와 진정한 결합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며, 물질은 악하고 영적 세계는 항상 물질과 충돌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현설을 주장하여 구속자에게서 참 인간성을 모두 박탈해 버렸으며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격성을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리관으로, 그노시스 윤리는 두 형태를 취한다. 하나는 지나친 금욕주의이고 다른 것은 자유분방 주의이다. 다수파는 육체에 고행을 하고 결혼을 금하는 금욕주의를 요구하여 신적인 영혼이 각종 감각적 굴레와 육체적 정욕으로부터 해방받아 좀 더 고상한 상태를 갈망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어떤 분파는 부도덕적인 성적 난행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유다서는 신적인 사랑이나 사랑의 축제를 악용하여 성적 문란을 야기했던 것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윤리관 속에서 어떤 때는 금욕주의와 방종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몇몇 노스틱파들은 자기들이 본질적으로 매우 영적이기 때문에 부패 할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교도들의 제전이나 검투사의 시합 장소에 거리낌 없이 갔었으며, 심지어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인 여자들과의 불규칙적인 연합을 서슴지 않았다.
6. 대표적 영지주의자들
영지주의자들로서는 그 첫째가 시몬 마구스와 시몬주의자들이 있었으며, 시몬은 영지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교회의 교부들은 시몬을 모든 이단의 아버지로 간주하였다. 그는 사도들과 동시대 사람이었고,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는 종교문제의 무법 지대로 소문나 있었고 정통파에 있어서 의심을 받았다. 그는 사도행전 8장에 나타나 있는 역사적 인물로서 처음에는 마술사였으나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고, 나중에는 이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단들의 아버지인 시몬은 하나님처럼 경배되었는데 시몬의 체계는 몇 가지 기독교 요소가 가미된 혼합주의적 조직이 형성되었다. 시몬의 체계는 단지 기독교 교리를 불완전하게 이해하여 근본적으로 이교도적인 조직에 흡수하였던 것이다. 어떤 것은 스토아 철학에 기인되고 어떤 것은 동양에 기인되고, 어떤 것은 기독교 요소로부터 기인되나 기독교적인 요소들은 대체로 적은 부분에 활용된다. 시몬주의자들의 분파는 3세기까지 계속되었는데, 시몬 마구스의 이름을 취하여 시몬을 구원하는 신으로 숭배하였다.
둘째로 니콜라주의자들도 영지주의에 속했었다. 니콜라주의자들은 요한 계시록 2장에 있는 방탕 주의 분파로 말하여진다. 니골라는 안디옥의 개종자이며 행 6:5의 예루살렘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니골라는 참 신앙으로부터 변절되었고 육체는 남용되어야 된다는 위험한 원리를 가르쳤다. 즉 기독교는 이미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하는 일과 생활은 이미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노시스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모든 종교의식은 인간에 의하여 참된 숭배로 변형되었다. 그들은 이교의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았다.
셋째로 세린더스는 1세기 끝날 무렵에 소아시아에 나타나서 늙은 사도 요한과 투쟁하였다. 그는 출생 또는 개종으로 이집트인이며 유대인이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바울에 반대하는 거짓 사도들 중의 하나였으며 할례를 주장하였다. 그는 팔레스틴과 갈라디아를 여행하였고 에베소에도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마태복음서를 일부 삭제한 것 외에는 모든 복음서를 거부하였고 모세 율법의 정당성과 천년왕국을 가르쳤다. 특히 그는 종교적인 철학적 사상의 경향을 나타내었는데 인간 예수와 더 높은 영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 높은 영이 강림하였다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에게서 다시 떠났다는 것이다.
넷째로 영지주의의 체계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실리데스이다. 바실리데스는 발렌티누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고 하드리안과 안토니누스피누스의 통치 동안에 성장하였다. 바실리데스는 서기 125년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하였고 발렌티누스는 140년에 로마에 왔다. 바실리데스는 그노시스의 첫 번째로 잘 발달된 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체계는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복잡하여 대중적이지 못했다. 그는 사도 맛디아의 제자이며 사도 베드로의 동역자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초기 젊은 시절은 기독교인들의 제2세대에 속하였고 이러한 사실은 그에게 신약성서의 문헌을 인용하는 것의 신중한 변증법적 사용을 부여한다. 그의 체계는 이집트의 천문학, 피타고라스의 숫자적인 상징주의에 근거하였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드러내는 것이나 플라톤주의 유출설, 이원론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섯째로 발렌티누스는 영지주의 체계에서 가장 영향 있고 심오하며 화려한 작가였다. 발렌티누스는 큰 학교를 세웠고 그의 교리를 서방에서 전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생도인 디도로부터 그의 체계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환상으로 로고스로부터 계시들을 받은 것처럼 가장한다. 그는 아마 이집트계 유대인이며,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발렌티누스는 로마에서 가르친 첫 번째 영지주의자였다. 그의 체계는 교묘한 신론과 우주 발생 서사시이다. 그는 창조, 타락, 구원이란 세 가지를 묘사하였는데 그 자신의 풍부한 상상과 동양적이고 헬라적인 사색과 기독교 사상으로부터 자료를 이끌어냈다. 그는 요한복음의 강화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폭넓게 주석하므로 자신의 범신론적이고 신화적인 공상을 사도들의 말들 즉, 로고스, 독생자, 진리, 삶, 플레로마, 에클레시아 등에 넣었다.
여섯째로 사토루니러스는 하드리안 통치하의 바실리데스와 동시대에 안디옥에 있었으며, 그는 시리아 그노시스파의 창시자로서 시몬과 메난더의 제자였다. 그의 체계는 하나님과 사탄의 두 가지 대립 사이에 엄격한 이원론과 금욕적인 인격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결혼과 자손은 사탄으로부터 왔으며 예언들은 세상을 만든 천사들에 의해 말해졌고 사탄도 하나의 천사로서 세상을 만든 자의 적이며 유대인 하나님의 적으로서 예언을 말하였다. 즉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은 천사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제하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해서 세상에 왔으며, 그리스도의 몸은 육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모양만 있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구원은 금욕하는 데 있다고 보았으며 육식은 금물이었다.
7. 신약성서에 나타난 영지주의
영지주의와 기독교는 동일한 환경으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물음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퓌메 퍼킨스가 쓴 『영지주의와 신약성서』를 통해 영지주의가 어떻게 산약 성서에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알아보겠다.
첫째로 지혜 교사로서의 예수이다. 『도마복음』은 어린아이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참 제자직을 위한 예로서 다룬다. 그것들은 인간성의 참 형상-하나님의 형성-을 회복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이러한 참 형상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하고, 인간을 죽음에게 복종하도록 만든 정욕과 물질적 육체의 결합 이전에 존재하였다. 도마복음의 한 구절을 보겠다.
‘예수는 몇몇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보았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품에 있는 이 어린이들은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과 같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어린이들처럼 왕국에 들어갈까요?”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고, 안을 밖처럼, 밖을 안처럼, 위를 아래처럼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서 남자가 더 이상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더 이상 여자가 아닐 때, 그리고 너희가 한 눈 대신에 눈들을, 한 손 대신에 한 손을, 한 발 대신에 한 발을, 한 형상 대신에 한 형상을 만든다면, 너희는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도마복음』22)
이러한 전통은 널리 증언되었다. 바울에 의해 갈 3:27-28에서 인용된 형식 안에서 전통은 변형되어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전통은 죽음으로의 추락으로서 양상인 아담/이부의 분리를 묘사하였던 영지주의 신화에 쉽게 동화되었다. 지혜는 영혼이 신의 형상에 동화되고 그래서 불멸함을 얻는 도구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전승의 형태는 또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철학적 tktotr 안에 나타난다.
둘째로 영지주의와 바울 전승이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는다면 육체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준 죄 많은 욕망을 위한 시작점이라는 바울의 인식은 영지주의 신화화 안에서 발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바울의 사상은 영지주의 신화화를 낳았던 유대 전승 안에서 생겨난 사색의 유형의 독립적인 발전일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가 그것의 후기 영지주의 해석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보다도 도덕적 교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바울은 그의 영지주의 경쟁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윤리적 권고의 상황 안에서 “육/영”의 반대 명제를 쉽게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 저자들에게서 발전된 신화 요소 들은 다른 점에서 불투명한 바울 사상에서의 요소들을 명백히 해준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이 인간은 육을 통하여 욕망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견해를 논쟁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들은 또한 세례는 죄와 죽음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로부터 엄밀하게 구분되는 생명을 주는 영의 영역 안으로의 참여를 제공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다른 천상의 존재는 없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주의 형상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바울은 전승에 대한 영지주의 변형에서처럼 선재하는 신의 지혜 인물에 의하여 태어난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부활한 그리고 영광을 받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한다.
8. 정통주의 VS영지주의
정통주의자와 영지주의자 간의 논쟁은 초기부터 계속되었다. 나그함마디 자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성은 이단주의 신봉자들로부터 유래한 영지주의 종파들에 대해 어떠한 일관된 목록을 주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레네우스는 영지주의 종파들에 대한 후기 정통파 기독교의 취급을 위해서 조건을 붙인다. 철학적인 배경들, 신학적 그리고 주석적인 배경들, 혹은 사회-정치적 배경들에 대해 공격이 모아진다. 이레네우스 안에서 발견된 철학적 논쟁들은 잘 설정된 수사학적 주제들을 따른다. 반대자들은 그들이 범한 과오들을 이교의 창시자인 시몬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볼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바보들이다. 그들은 참된 존재들을 위한 심리학적인 과정들을 오해하고 어리석은 유추들로부터 결론들을 이끌어낸다. 철학적 논쟁들은 이레네우스가 영지주의 학파들의 계보를 확립한 이단에 대하여의 첫 권 안에 나타난다. 그는 영지주의 교사들이 헬라의 철학적 사색의 쓸모없는 옛 조각을 가지고 새 옷을 엮는다고 비난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학 혹은 심리학 분야에 있어 가장 최근의 발견이 이전의 발견을 능가한다고 믿게 마련인 것처럼, 영지주의자들은 현재에나 미래에나 지식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레네우스는 이를 오만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성숙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위대한 “영지”에 있어 자신들과 필적한 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베드로나 바울, 기타 어떤 사도의 이름을 언급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보다 더 많은 발견을 이루었으며, 사도들이 유대교의 영향을 받아 복음을 전도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사도들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박학다식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통파 교회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사도의 계승 줄기 외에도 양한 줄기가 있으며 자신들은 그에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영지주의 교사인 프톨레미우스는 잠재적 입문자로 보았던 플로라라는 여인에게, “우리 역시” 교사들을 따라 계승되는 사도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이는 정전으로 인정된 예수의 말씀에 비교적 내용을 덧붙이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초대교부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질서와 체계에 대해 심각하게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이 영적 성숙함을 증거로 찬양했던 바를 정통파에서는 사도의 전통에서 “벗어났다”하여 배척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 모두 자신이 이어받은 전통을 각자 취향에 맞추어 멋대로 변경하고 있다. 이들에게 그 전통을 전수했던 사람들이 마음대로 전통을 변경하고 고쳤던 것처럼 말이다.’
‘각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발전시켰거나 전수받았다는 바로 그 가르침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이야말로 이단자들을 사도들의 이방인이자 원수로 보아야 하는 근거이다.’
사도의 권위에 대한 2세기 초 견해들로부터 영지주의 저자들을 후퇴시키고자 했던 이레니우스의 논쟁이 성공한 것은 네 개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증대하는 영향에 적지 않게 힘입었다. 이집트 기독교로부터 나온 현존하는 자료는 이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이집트 안에 현존하는 사본들에 대한 연구는 콥틱 기독교가 주로 영지주의적 환경 안에서 기원하였다는 더 오래된 학적인 주장들을 무력하게 한다. 대신에, 영지주의와 정통주의 자료 모두를 동시에 포함하는 사본들이 나오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들은 더구나 철자법에 있어서 전문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기관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개인의 기호법과 마찬가지로 제목들의 사용에 있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통주의 사본들은 정확하고 간결한 철자법, 언어의 일치, 그리고 사본 자체의 주의 깊은 구성을 나타낸다. 영지주의 문헌들은 신성한 책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지 않는다.
9. 나가는 말
우리는 신약성서의 이해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결코 신약성서가 독자적으로 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 속에는 정치적 배경, 사회적 배경, 종교적 배경, 사상적 배경 등 다양한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배경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산물이 바로 신약성서인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에 배경지식을 알게 되면 더 쉽게 알 수 있다고 배운다. 신약성서도 마찬가지로 배경을 알지 못하면 복음서, 신약성서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기 힘들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배경 중에서 영지주의에 대해 알아보았다. 영지주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히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지주의는 정통주의의 형성에 간접적인 촉진제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단들의 도전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단 사상이 등장하면서 정통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점에서 이단 사상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등을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듯이, 신약성서에도 상당 부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이번 과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단으로 정죄되는 과정이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이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게 마련이다. 기독교의 경우도 예외는 어니어서, 기독교 기원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승자였던 다수의 견해가 주로 반영되어 있다. 제도적 교회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먼저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였다. 자신들을 “정통파”, 반대세력을 “이단자”로 규정했다. 다음으로 그들의 승리가 역사적 필연으로 스스로의 만족을 부각했다. 그러나 나그함마디의 발견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발견된 문헌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기독교가 살아남지 못했을 수 도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독교가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졌다면, 아마 고대의 수많은 경쟁 종교 집단과 함께 사라졌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도 과거의 가톨릭에게는 이단이었다. 물론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교리나 사상은 성경적이지 못하고, 우리에게 끼쳤던 부정적 영향은 많이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물질계와 영계로 존재를 나누고 물질을 죄악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은 영계를 다스리시고, 데미우르고스가 물질계를 만들어 다스리는 것으로 말함으로 참 하나님과 창조주를 분리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예수의 육체 탄생을 부인하여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생애, 행위, 교훈, 죽음 및 부활로부터 신앙을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 어떤 파에서는 예수는 육체를 입었으나 그것은 메시아로서 공적 사역을 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빌어 쓴 것으로 보았으며, 또 다른 파에서는 그리스도는 결코 육체와 관련이 없었으나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며 사실 순수 정신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며, 또 다른 체계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에온’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혼합주의로 나아갔고, 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헌들을 무조건적인 배척을 하고 없애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1세기 기독교인들이 경험했던 바를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의 자세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지주의를 통해서 본 신약성서로 우리는 또 새로운 신약성서의 관점을 찾았다. 더 많은 배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편협한 시각이 아닌,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에 우리는 진정한 깊이 있는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도서**
-유태엽, 복음서 이해
-유태엽, 영지주의와 신약성서
-에두아르트 로제, 신약성서 배경사
-일레인 페이절스,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김의환, 기독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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