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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신학 과제

구약이해 : 억압에서의 해방(출애굽)

by 보통목사 2022.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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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서의 해방

 

여는 말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출애굽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왔던 성경 중에 하나이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모세와 그의 형 아론에 의해 나타난 “히브리인의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교활한 마술사들을 거느리고 이집트의 세력과 영광을 지닌 완고한 바로이다. 이야기의 처음 시작은 바로가 히브리인들을 꺾기 위해 히브리인들에게 중노동을 시키고 더 나가서 히브리인들의 새로 태어나는 장자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대학살을 감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모세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이집트 식으로 양육되어 자라게 된다. 모세는 후에 바로 왕을 찾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말한다. 찾아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쉽게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거대한 재앙으로 인해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떠나는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뀐 바로는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을 쫓아갔고, 홍해 바다에 삼켜지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우리는 출애굽을 통하여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출애굽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다음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다. 

 

 

1. 모세, 자신의 힘으로

   출애굽기를 잘 못 읽다가는 큰 오류에 빠지기 쉽다. 마치 모세가 주인공이 되어서, 모세의 뛰어난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루었다는 오류이다. 하지만 출애굽기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이다.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강한 손과 편 팔로 바로와 그의 군대를 쳐서 승리하는 하나님을 기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세의 역할을 너무 간과하면 안 된다. 정치적인 지도자로서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올 수 있었고 또한 위기와 기적의 의미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른 것 보다 먼저 모세의 출신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모세가 이집트 식으로 교육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출애굽기 2장 전승은 비록 민간전승의 색채가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인 것 같다. 갈상자에서 아기를 넣었다는 이야기는 아카드의 사르곤의 전설과 비슷하다. 사르곤은 비문에서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몰래 낳았고, 역청을 바른 골풀로 만든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다고 했다. 물을 긷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아키가 그를 건져 내어 그의 아들로 키웠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바로의 딸에 의해 모세가 입양되었다(출 1:7-10)는 주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문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 이 법문서 에서는 아이를 젖먹이는 유모에게 맡겨 임금을 지급하고, 그다음 3년 간 후견인의 보호 하에 있다가 율사의 교육을 받기 위해 입양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이집트 궁정에서 교육받은 모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은 히브리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집트인 공사 감독이 히브리인 노예를 구타하는 것을 보고 모세가 그 공사 감독을 죽인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살인을 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자 도망을 갔고 람세스 2세의 집권 초기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이집트 궁정에서 교육을 받고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은 그는, 이러한 자신의 배경과 능력으로 히브리인들을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사 감독관을 자신의 힘으로 죽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응원해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살인자라고 몰아세움을 당한 모세는 급기야 도망을 가기 시작한다.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둔 모든 것을 일순간에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자신을 버리는 훈련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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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세, 하나님의 능력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가축을 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여기서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시적으로 읽게 된다면 꺼지지 않고 계속 가시나무에 불이 붙는 기적과 같은 일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가 눈으로 무엇을 보았건 간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표징이 되었다. 광야는 신성한 장소로 거룩하게 변했으며, 그래서 모세는 자기의 신을 벗어야만 했다. 여기서 모세의 행동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모세는 엘로힘 뵙기가 두려워 그의 얼굴을 가렸다.”(출 3:6) 하나님은 자기의 의도를 이루기 위해 약속의 말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신앙의 핵심을 볼 수 있다.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의견을 갖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알려졌다는 주장을 하고, 또 어떤 학자는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부터 알려졌다는 주장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모세 시대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앙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 이다.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은 모세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능력이나 힘을 믿고 있었던 것이 이전의 모세의 모습이라며,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는 바로와 투쟁을 벌인다. 

 

 

3. VS 바로 

   야훼는 바로의 완고함을 꺾기 위해서 이집트에 연속적으로 계속 10가지 재앙을 내린다.(출 7:8-11:10) 출애굽기에 많은 의문점이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기적의 사건과 역사적 정황이 맞지 않다는 것을 본다거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계속적인 의문점이 들 수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출애굽 이야기는 전승의 긴 역사의 결과이고, 다양한 부류의 기자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가필된 것이다. 책에서 본 바와 같이, 초기 시대부터 이 이야기는 유월절을 거행하면서 낭송되어 왔다. 이것은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을 회상하고 다듬었던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그리고 여러 세기에 걸쳐 전승되어 오면서 제사장계 기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편집하여 기록한 것이다. 성경에서 기적의 의미는 자연 질서의 방해로써의 기적이라는 우리의 관념과는 다르다. 성경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는 동안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에 의해 윤색되고 각색된 전승의 본질에 담겨있는 역사적인 핵심 사항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출애굽 이야기 안에서 기적들 중에는 좀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있고, 모세 시기에 근본을 두고 있는 기적도 있다. 출애굽 이야기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의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른 사실에서와 같이 야훼께서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기술적이고도 상상력이 가득 찬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출애굽 이야기라는 것이다. 

 

4. 탈출

   결국 바로는 마지막 재앙을 겪은 후,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이집트를 빠져나왔다. 출 12:37에 의하면, 이때 빠져나온 사람이 20세 이상의 장정만 해도 “보행자로 60만 명”이라고 되어있다. 여자와 아이들, 십 대, 노인들을 합하면 적어도 200만 명은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거 탈출은 후대의 인구수에 비추어 본다면 과정 된 것 같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 무리는 비교적 소규모였을 것

 

이다. 그러나 탈출한 사람들이 야곱의 집안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의 하피루를 나타내는 “혼합된 무리”(12:38)로 구성된 잡다한 집단이었다는 기록은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 경로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다음의 한 구절이 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출 13:17).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출 13:17)이라는 구절이 시대착오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표현에서 출애굽 이야기가 후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성경 문헌으로는 그들의 정확한 탈출 경로를 알 수 없다. 처음 출발은 해안도로의 지중해 쪽에 위치한 늪지대인 시르보니스 호수의 바알-사폰으로 향해 있는 북쪽 길을 따라갔다는 증거는 여럿 있다. 불기둥으로 물기둥으로 보호하시고, 특히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 인들에게 특별한 사건이 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야말로 “너무 독특하고 예외적이어서 고대 이스라엘 신앙 고백의 본질이며, 이스라엘 역사의 진정한 시초며,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 이야기들 안에서 출애굽 사건이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에 비추어 볼 때, 이집트 문헌에서 바로의 세력으로부터 도망간 모세와 히브리인들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람세스 2세가 델타 지역에 세운 웅장한 사원과 화려한 궁궐 건축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곳에 기록 보관소도 역시 사라져 버려서 "찾을 수 없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사건은 한 민족의 탈출이 아니라 제19왕조의 바로들이 치른 전쟁과 문화적인 업적이었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출애굽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모세의 부르심부터 바로와의 승부, 그리고 탈출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준비하신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자신의 힘을 믿었던 모세는 한 사람의 애굽인 만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는 민족 지도자가 되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이 장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들어온 것이 이 감리교신학대학교이다. 나는 내가 다니는 감리교신학대학교가 모세의 바로 궁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배운 것, 내가 익힌 것을 뽐내고 자랑하는 인생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 앞에, 마치 주님 앞에 신을 벗었던 모세와 같이 겸손해지는 것 말이다. 사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출애굽기를 잘 못 읽게 되면 모세가 너무도 영웅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 하지만 모세는 한 명의 애굽인을 죽여 자기 동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던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도, 목회 가운데도 온전히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성실한 종, 진실한 종이 되기를 다시 한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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