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기원
여는 말 : 이야기 VS 역사
이야기와 역사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이야기와 역사의 측면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만약 성경이 역사적 사건들의 편견 없는 보고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성경이 단순히 상상력에서 나온 설화를 말한다면, 성경의 역사가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경을 바라볼 때에 이야기와 역사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기원을 알기에 앞서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성경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성경의 전승은 어디서부터 봤으며, 이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갈 때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해 한 단계 더 다가갈 것이라 생각한다.
1. 전승의 본질 : 문학적 모자이크의 미학
비평은 더 좋은 이해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한 평가가 그 교향곡이 연주되었을 때의 기쁨을 더 깊게 하듯이 비평도 더욱 심화된 이해력을 가지고 성경 이야기를 다시 읽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조되어야 할 점은, 성경 연구의 시작과 끝은 바로 성경의 내용 자체라는 점이다. 모세 오경의 비평사는 중세의 유대인 학자 에스라에 의해 시작되었다. 에스라는 기자가 모세로 알려진 모세 오경의 일부가 모세 사후에 집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근거는 아브라함의 설화 중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에 관해 15장, 17장 두 번의 언급이 있다. 아브라함의 잘못을 아들인 이삭도 같은 거짓말을 한다. 출애굽 이야기에서는 같은 산을 두고도 시내와 호렙이라는 두 가지 명칭이 사용된다. 모세를 부름과 아론의 지명에 관해서도 두 번 언급되어 있는데, 그 한 곳은 미디안 땅(출 3:1-4:17)이고 다른 한 곳은 애굽(출 6:2-7:7)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는 야훼라고 알려져 있는 하나님의 이름도 다르게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반복, 불규칙, 모순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유대교, 개신교, 가톨릭 학자들의 지배적인 이론은 모세 오경이 수 세대를 거쳐 오면서 전승되는 동안 여러 다양한 문학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형성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인 “모자이크”에는 모세에서 시작되는 신앙의 근본적인 의미가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수 세대를 걸쳐 이스라엘 공동체가 체험하여 얻은 의미까지 섞여 있다. 토라의 결정적 내용은 모세에서 비롯된 신앙의 본래 주제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본래의 주제에서 결과하게 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2. 구전 전승 : 입에서 입으로
고대에서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승은 종교의식이나 비공식적인 기회를 통해 구전으로 전해졌다. 구전되고 재해석되면서 전해진 이스라엘 이야기의 커다란 주제는 다음 5가지와 같다. 조상들에게 준 약속 애굽에서의 노예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심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출현과 율법을 줌 광야에서 인도하심 약속의 땅을 상속. 초기 구전 시기에 이러한 주제는 기록 형식으로 원형이 잡히기 오래전에 역사적인 서사시에 이미 섞여 있었다. 왕정 시기 동안 여러 다양한 형태로 문학적인 형태가 나타나서 마침내 이러한 여러 문학적인 전승이 제사장계 기자에 의해서 종합 정리되어 오늘날 우리가 정경으로 물려받은 모세 오경이 완성된 것이다. 구전 전승의 시작은 약 주전 1800년으로 보고 있다.
3. 설화자의 관점
앞에서 우리는 성경적 드라마의 연구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살펴보았다. 이야기 안에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다양한 문학사적 전승이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학적 전승은 출애굽 사건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구전되었다. 이러한 기존 문제에 추가로 한 가지가 더 제기된다. 그것은 출애굽 이야기는 구전 형식이든 기록에 의한 것이든 객관적인 역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지금의 우리들의 시각에서 볼 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점이 있긴 하지만 출애굽 이야기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써졌다는 사실만으로 구속사의 신빙성을 전적으로 의심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역사란 실에 구슬을 꿰듯이 연대 순서로 일어난 사건을 질서 정연하게만 늘어놓는 것을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은 사람들의 체험 안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면서 일어난다. 역사란 어쩔 수 없이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출애굽을 단순히 정치적인 사건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를 대면하는 성경 기자들은 출애굽의 사건이야말로 신성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단지 노예 상태를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노예들을 하나님이 구원했고, 이 구원시킨 노예들을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출애굽은 인간 세계를 완전하게 초월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의 이야기는 경이로운 것과 하늘의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 각색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청천벽력처럼 내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과 위기를 통해 내려왔으며, 일단 대중이 깨닫지 못하는 초자연적 차원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그 계시를 받았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초기 역사는 역사가들이 다룰 수 있는 영역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4. 출애굽기 서문 : 요셉을 모르는 애굽 왕
우리는 출애굽기의 서막을 다루기 위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라고 알려져 있는 지역을 사려보아야 한다. 이 지역은 활 모양을 한 비옥한 땅인데, 아라비아 사막을 접경으로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충적 평야를 거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돌아 이집트의 나일 강까지 뻗어 있다. 이 지역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첫 히브리인들이 출현하기 전 수세기 동안 인간 활동의 중심 무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인 “갈대아의 우르”에서 시작한다. 이때까지의 사회 조직은 국가의 정치적인 정부 조직 같은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로서 족장이 있는 씨족이나 부족의 조직이었다. 아브라함에서, 야곱에서, 요셉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요셉을 모르는 애굽 왕이 통치를 하게 되면서 히브리인들은 압제를 받기 시작하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출애굽기는 시작되고 있다.
5.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민족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초기 청동기부터 중기 청동기까지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의 도시인 우리의 유적들은 찬란한 고대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이스라엘 조상들의 시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특별히 아모리족, 후리족, 하피루족, 아람족에 대해 알아보겠다.
아모리족의 출현
수리아-팔레스타인에서 중기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전기 청동기 시대에 번성하였던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붕괴들이 일어났다. 주전 2000년대 초에 일어난 이러한 도시 생활의 붕괴는 당시의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속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한 아모리족의 민족 이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몇몇 역사가들의 판단에 의하면, 창세기 12:1-6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도 아모리족의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침입과 같은 시기가 아니었나 추정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주전 18세기에 살
았던 인물이며, 아모리족 왕 함무라비와 동시대 인물이 된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아모리족의 고향에서 나온 몇 가지 전승은 아마도 그 후에 변형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초기 성경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서사시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법은 하나님과의 언약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식과 내용 면에서 어느 정도는 함무라비 법전의 영향을 받았다.
후리족의 이동
수메르인의 우르 왕조의 몰락에 의해 야기된 정치적인 공백 상태에 또 다른 민족이 몰려들었으니, 아마도 호리족과 관련되어 있는 후리족이거나 또는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히위족일 것이다. 그들은 상당히 진보된 전쟁 무기를 익숙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가나안, 시리아, 상 메소포타미아를 침입한 이집트 군대와 자주 충돌했다. 주전 1919년 이전의 후리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헷족
오늘날 터키 지역인 서부 산악지대를 지나면 헷족으로 알려진 민족이 강력한 나라를 세웠다. 그들은 아나톨리아 또는 소아시아에 있는 그들의 산으로 둘러싸인 본거지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으로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마침내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두고 이집트와 겨루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헷족은 그 이름 이상은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07년에 오늘날 보가즈코이라고 불리는 헷족의 수도가 발굴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무덤을 헷사람에게서 샀다는 성경 전승은 헷족의 세력이 멀리 남쪽 가나안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피루
주전 2000년기의 문서에서 많이 언급된 사람들로서 하피루가 있다. 이들은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가나안, 이집트에 흩어져 살던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피루는 비록 많은 셈족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민족이나 종족을 이룬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근동의 여러 나라에서 시민권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회 계층을 말한다.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하피루라는 말과 성경에 나타나는 히브리라는 말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정착민 사이에서 거류민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생활 방식은 이집트의 베니 하산의 무덤 벽에 그려진 반유목민의 생활과 아주 흡사하다.
아람족의 출현
고대 역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리된 움직임처럼 보인다. 하나는 우르왕조( 주전 2000)의 몰락 시기에 일어난 아모리족의 침투이고, 다른 하나는 헷 제국과 이집트 제국의 붕괴 이후의 아람촉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주전 1200) 성경에는 아람족에 대한 거듭되는 언급이 있다. 그러면 성경과 역사 사이에 심각한 오류가 생긴다. 창세기의 전승은 주전 1200년경에 시작된 중기 청동기 시기부터 초기 철기시대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견해에 의하면 모세(주전 13세기 초) 이후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
아람족 문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에서 기자들은 후에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시기를 언급하는 데 마치 오늘날 우리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고대 지명을 “중동”또는 “근동”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둘째,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는 아람족과 다른 민족들이 정치적인 강국이었을 시기, 즉 이스라엘이 지파 동맹의 시기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6.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나님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 사회가 우주의 신적인 질서와 통합되어 있다는 확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땅의 왕국들은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최상의 신은 우주적 질서 세계에서 비교적 민주적인 방식으로 천상의 회의를 주재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는 구원의 희망을 주고 있었다. 이집트의 문화도 신적인 질서가 인간 사회의 질서에 반영되어 있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문화는 고대 근동의 문화 안에서 뚜렷한 구분을 짓는다. 비록 아브라함이 그의 고향과 하란에 있는 친척들을 버리고 떠나게 된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제의를 포기하게 만든 새로운 종교적 전망에 의해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험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종교는 가나안의 종교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조상들은 자기네들의 하나님을 엘과 동일시할 수 있었고 따라서 엘 샤다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종교가 가나안의 토착 종교와 “아버지 신”을 경배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큰 중요성을 띠게 된 주된 차이점들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점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조상들 사이의 계약 관계를 다루는 창세기에서 샤다이라는 이름을 은영 중에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창세기 1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종교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 신과 개인적인 관계 또는 “계약”맺는 관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종교적 특징은 씨족 또는 가족 간의 강한 연대 의식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가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이시며, 가족들은 하나님의 가정의 가족이었다. “고 말할 수 있다. 양 떼를 돌보는 목자 같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미래를 약속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으로부터 이끌어내어 그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여 새로운 장소에 이르게 했다.
7. 이집트로 이주
창세기 후반부에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았고 대기근이 들자 야곱의 가족을 이집트의 델타 지역으로 이끌어 살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전 2000년의 이집트 역사에서는 아시아인들이 정부의 요직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엘 아마르나에 있는 무덤의 벽화에는 요셉이 등용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바로는 요셉에게 금사슬을 주고, 자기 전차에 태워 백성은 그 앞에서 엎드리며 환호하도록 했다. 이것으로 볼 때 요셉의 이야기는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요셉의 이야기는 완전한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전 2000년 기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소설이다.
힉소스족의 침입
힉소스족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셈족인 것 같지만 헷족과 후리족도 있었다. 주전 17세기 동안 힉소스족은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러나 1600년 직후에 이집트인의 혁명이 일어났다. 아바리스 시는 이집트인에 점령되었고, 힉소스족은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했으며, 세겜과 같은 도시들은 파괴되었다. 힉소스족의 이집트 침입과, 야곱과 그의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한 사건이 같은 시기에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흥미롭다. 히브리족의 이주는 힉소스족의 이동에 끼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 전승은 이야기를 생생하고도 똑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단축하고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사건들을 단순화시켜 전했을 것이다.
8. 이집트에서의 압제
압제자 바로
안타깝게도 성경은 정책을 변화시켜 델타 지역의 셈족을 압제한 바로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주를 힉소스족의 침입과 같은 시기로 보고, 그리고 아모스 1세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으로 보는 견해를 갖고 있다. 주전 14세기 말에 시작된 제19왕조 시기를 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제19왕조에서 강력한 첫 왕이었던 세토스 1세는 힉소스족의 옛 수도였던 아바리스를 재건축하기 시작했다. 히브리 노예들은 이러한 건설 현장에 동원되었다. 더군다나 이집트 문헌에 의하면 바로들은 공공사업에 하피루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요셉이 어느 바로 시대에 살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출애굽기 서장의 배경은 차치하고 출애굽기 서장의 배경은 이집트 제19왕조, 특히 세토스 1세와 람세스 2세 때의 억압 하에서 일어난 상황이라 추정한다. 비록 정확한 시기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출애굽이 람세스 2세기의 집권 초기에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앞에서 논의된 것으로 보아 성경의 이야기는 정치적인 상황을 사실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의 눈을 통해 해석된 것들이다. 역사적인 탐구로 성경 이야기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인 사왕의 전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신앙의 숭고한 언어로 선포한 사건의 내적 의미에 대한 형을 뛰어넘기 위해는 종교적인 마음이 요구된다. 출애굽의 중요성은 그 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에서 하나님의 뜻이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Comment
지금까지 구약성서이해의 1장 부분은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처음 읽을 때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최대한 읽기 쉬운 책 한 권을 자체적으로 참고도서로 지정하고 보았다. 두 번, 세 번 읽어 갈수록 또한 몇 권의 책을 함께 읽으니 훨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배우는 구약성서, 그리고 그 수업의 첫 레포트였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아 많은 시간을 들였다. 많은 역사적인 정황들과 성경의 내용들을 비교하면서 나는 성경이 허무맹랑하게 주어진 소설이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충분히 역사적인 정황들이 성경의 내용들을 증거 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성서학을 배워갈 때에 역사에 성경을 비추어 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연구의 시작과 끝은 성경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구약 이해를 배워나가면서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대하겠지만, 그것의 끝은 반드시 성경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참고도서>
1. 버나드 W. 앤더슨, 구약성서 이해, 크리스챤 다이제스트(37-75p)
2. J 맥스웰 밀러, 존 H. 헤이스, 고대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2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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