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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신약 성경

보통 목사의 성경 공부(중급편),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란?, 야고보서 1장

by 보통목사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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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0분 성경의 보통 목사입니다. 
오늘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무엇인지 야고보서 1장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경건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보통 경건이라고 하면 먼지 하나도 용납하지 않은 깨끗한 옷과 바닥을 뚫을 정도의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 그리고 느릿하지만 기품 있는 발걸음, 너무 많이 읽어서 다 헤어진 낡은 성경책을 떠올리죠. 우리가 흔히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모습들은 전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죠. 

 

 

그런데 야고보서에는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경건’의 모습이 나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입니다.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첫 번째 모습은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경건이란.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도 더 오래하고 예배를 더 많이 드려야 생기는 것 같은데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죠. 교회 안이 아닌 교회 밖 삶의 자리에서 가난하고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진짜 경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성경을 많이 읽고, 암송하고, 찬송과 기도도 유창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교회 밖, 삶의 자리에서 나보다 연약한 자들의 어려움에 눈을 감는다면 그런 경건은 정결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더러운 경건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야고보서에만 나와 있는 특별한 내용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통해 또 예수님을 통해 줄기차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너희들 제발 너희 자신과 가족들만 생각하지 말고, 너희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좀 생각하고 챙겨라” “연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은 채, 너희들만 좋아서 드리는 예배와 제사? 나는 받지 않겠다.”라고 말이죠. 아모스서 5장 11절과 12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1.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12.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자,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착취하고 학대한 후에 드리는 경건하고 거룩해 보이는 예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모스서 5장 21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을 역시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1."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사실 저도 이 말씀 앞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평범한 한 개인으로 제 가족들만 챙기는 것도 버겁고 힘에 부치거든요. 우리 모두 얼마나 치열하고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까?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내가 남을 누르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고, 쉼 없이 일을 해야 겨우 한 가족 빠듯하게 살 수 있을 만큼만 된다는 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에게 도움도 안 되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도와서 무엇이 남는 거냐고, 그게 얼마나 죽을 만큼 힘든 일인지 아냐고 따져 묻는다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 그토록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도리어 그 길이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요? 

그 길이 우리가 날마다 찬양하고, 기도로 고백하는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 아닐까요? 

 

여러분, 인류의 평화와 민족의 구원 그리고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 또 내일부터 만나게 될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 특별히 연약한 자들에게는 힘이 되어주고, 억울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 그런 경건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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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두 번째 모습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 뭔가 알 듯 말 듯하죠. 그런데 너무나 고맙게도 야고보는 이에 대해 아주 실제적인 예를 하나 들어줍니다. 오늘 본문 1장 19절과 20절의 말씀입니다.

 

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간단히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듣는 것은 대충하고 말하기는 빨리 해서 성질을 부린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듣는 것을 잘하고, 말하는 것은 거듭 생각해서 더디 해라. 그리고 성질도 그만 부려라! 이것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교회에서 또 가정과 직장 이웃들과의 모임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듣기는 더디하고, 듣는 데는 관심이 없고 말하기는 빨리 하는 사람입니까? 말로 분쟁을 일으키며,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성질을 부리며 다니는 세속에 물든 사람인가요? 아니면,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하고, 그 한마디조차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경건의 사람인가요?
물론, 우리가 사는 환경이 얼마나 말을 참기 어려운 환경인줄 저도 압니다.. 뭔가 남을 헐뜯는 말을 해야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고, 혼자가 되지 않고, 또 거친 말을 섞어가며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옆집 사람을 흉볼 때, 그 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좁은 길'이고

, '십자가의 길'입니다. 

 


좁은 길과 십자가의 길은 내 목에 칼과 총을 겨누며 '예수님을 부인하라'는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좁은 길과 십자가의 길은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내 삶의 자리, 남을 욕하고 헐뜯는 내 일상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물어 옵니다.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다는 고백을 하기전에, 남을 욕하고 성질을 부릴 만한 상황 앞에서도 먼저 인내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인내를 다른 어떤 고백과 기도보다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기억하세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진짜 경건의 두 가지 모습! 1) 연약한 자들을 돌보며 2)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참된 경건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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