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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신학 과제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by 보통목사 2022.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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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통해서 살펴본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목 차 Contents



들어가는 말 


본  론 


1. 몰트만의 구원론
   1) 칼 바르트의 화해론 
   2) 몰트만의 만유구원론 


2.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의 전제    
   1) 매개의 방법론 
   2) 종말론적 방법
   3) 삼위일체론적 방법  
 
3.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의 전개 
   1) 종말론적 그리스도론   
   2) 창조의 중재자 그리스도  
   3) 그리스도의 완성 파루시아 
 
나가는 말 _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평가 

 

 

들어가는 말 

‘나는 하늘에 대한 영원한 그리스도론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의 갈등 속에서 도상에 있으며 방향을 찾고 있는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론을 원하였다.’ 

몰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의 머리말 부분의 내용이다. 한 문장을 통해서 몰트만의 신학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발제의 방향과 목적도 이와 같다.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을 통해서 오늘날 고통과 갈등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고 어떤 대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제가 그리스도론임에도 불구하고 몰트만의 구원론이 가장 처음에 등장한다. 이는 구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예수가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는 몰트만의 구원론에 대해서 짧게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몰트만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본 론 

 

1. 몰트만의 구원론   

 

1) 칼 바르트의 화해론  

몰트만의 구원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칼 바르트의 화해론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만큼 몰트만은 칼 바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1953년 『교회교의학』제4권의 화해론을 통해서 칼 바르트는 객관적 화해론과 주관적 화해론을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주관적 화해론을 비판한다. 주관적 화해론은 하나님과 사람이 화해되는 순간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를 비판하며 바르트는 객관적 화해론을 말하는데, 사람과 하나님이 화해되는 순간은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들의 주관적 태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일어났음을 말한다. 바르트는 자신의 주장을 만인 구원론이 아닌, 만인 화해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바르트의 화해론은 많은 질문을 낳는다.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그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용서하셨는데, 그들은 심판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바르트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고, 구원론을 쓰지 못한 채 1968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2) 몰트만의 만유구원론  

바르트가 『교회교의학』 구원론을 쓰지 못하고 아쉽게 죽은 지 27년이 지난 1995년에 바르트의 신학은 위르겐 몰트만에 의해서 부흥되어 나타난다.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말 그래도 만유가 구원을 받는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몰트만은 저주는 있다고 말한다. 지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저주와 지옥의 영원에 대한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영원을 나타내는 헬라어 ‘아이오니오스’는 같은 의미의 히브리어 ‘울람’과 마찬가지로 끝을 제한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지 헬라 형이상학에서 절대적 의미의 영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이런 단어들은 복수형이 존재한다. 몰트만에 의하면 마가복음 9:48절에 나와 있는 지옥의 불은 교육적 형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화의 불이다. 몰트만이 자신의 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대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도행전 3:21, 엡 1:10, 골 1:20, 빌 2:10-11, 고전 15:25, 고전 15:22, 롬 11:32) 몰트만에게 마지막 날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는 것뿐만 아니라 만유가 회복되는 만유의 구원이다. 

몰트만은 성서에서 말하는 이중적 심판은 축복과 저주로 갈리기 때문에 성서에서도 강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저주가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이 만유를 구원하는 것이고, 만유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이 십자가 속에 밝히 나타났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지옥이 영원하다면 십자가에 계시된 은총과 자비의 신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2.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의 전제   

 

1) 매개의 방법론   

몰트만은 그리스도교 전통과 현대 문화를 매개하는 것이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현대인의 전망이나 문제점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교 신학은 내용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몰트만은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론이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성서적 증언에 대한 검증으로만 끝이 난다면, 그것이 아무리 성서와 일치하는 것일지라도 현재적 상황의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치료학적 그리스도론은 구원론적 그리스도론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구원을 오늘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기술해야 한다. 구원은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은 구원론과는 별개의, 혹은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밀접하게 관련시키는 매개의 방법론을 택했음을 알 수 있다. 

 

2) 종말론적 방법   

몰트만은 종말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종말론을 신학체계의 중심으로 삼는다. 종말론과 그리스도론은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 종말론적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과거나 현재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를 묻는다.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예기된다고 한다. 이렇게 될 때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십자가에 이르는 길이 종말론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활은 그의 죽음과 십자가뿐만 아니라 그의 전체 인격과 삶, 선포와 활동에 대하여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3) 삼위일체론적 방법   

몰트만의 그리스도론을 이해하는 데에 삼위일체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론은 신학 전문가들을 위한 하나의 사변이고, 현실적으로 볼 때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칸트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삼위일체론은 설사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천적 의미를 갖고 잇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배웠던 19세기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에게도 삼위일체론은 자기의식 가운데 경험되지 않는 신에 관한 이론인 삼위일체론은 불필요했다. 그러나 몰트만은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십자가 사건이고, 십자가 사건의 해석이 삼위일체론의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성령을 통한 “관계의 사건”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의 특성을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라고 하는데, 그는 아버지와 아들, 성령 상호 간의 거함과 그 거함을 통하여 나타난 영원한 ‘사귐’을 ‘순환’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한다. 세 인격들이 상호 간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사랑의 영원한 순환 가운데 스스로가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에 대해 일방적인 지배의 관계로 보지 않고, 도리어 다양한 사귐의 관계로 이해한다.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자신의 삼위일체적 그리스도론을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삼위일체적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처음부터 관계들 안에 잇는 존재로 보며 그의 활동을 처음부터 상호 교환의 활동으로 본다. 이러한 삼위일체론적 방법은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태학적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해결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3.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전개 

 

1) 종말론적 그리스도론  

몰트만은 고대교회의 위로부터의 우주론적 기독론과 근대의 아래로부터의 인간학적 기독론의 테마가 다 협소하다고 비판한다. 전자를 취할 경우 그리스도의 역사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지 않고 로고스가 땅 위에 왔다가 하늘로 올라간 종적(자취, 형상) 역사로 간주될 수 있다. 2천 년 전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던 예수의 삶의 역사는 간과되게 된다. 후자를 취할 경우 구약성서의 약속의 역사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고, 죽음과 함께 예수의 실존이 끝나버리게 된다. 몰트만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도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도 아닌 ‘앞으로부터의 그리스도론’즉 ‘종말론적 그리스도론’을 말한다. 이는 구약성서의 약속들을 통하여 알려진 역사의 미래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아적 기다림이며 묵시문학적 지평인 것이다. 

“종말론적”이라는 말은 장차 올 세계 구원, 곧 모든 민족들의 메시아적 평화의 나라가 실현되고, 창조가 영광의 나라로 완성됨으로써 오게 되는 세계 구원을 가리킨다. “종말론적 역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 약속과 계약을 통하여 이 미래를 지향하며 이 미래의 지평 속에서 경험되고 작용하는 역사를 가리킨다. 그것은 삶의 약속 아래에 있는 역사이다. 인간에게 역사의 경험을 열어 주는 종말론적 지평은 하나님의 지평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포괄한다. 창조자 하나님의 지평은 우주적 지평이다.  

 

2) 창조의 중재자      

지금까지의 창조론은 창조를 단지 태초의 창조로만 이해하며 계속되는 창조와 모든 것을 완성하는 창조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창조와 구원은 분리된다. 몰트만은 전통적 창조론의 이런 한계를 인식하면서 통일된 창조의 과정을 말하는데 즉, 태초의 창조와 함께 시작하여 창조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며 모든 것의 새 창조에서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몰트만은 이러한 통일된 과정에 상응하는 우주적 그리스도가 지닌 창조의 중재자직을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한다. 

 

(1) 모든 것의 창조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 : 그를 통하여 

만물이 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만물의 다양성과 그 역사성에는 하나의 초월적 통일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은 신들이나 권세들의 많은 세계가 아니라 한 하나님의 하나의 창조이다. 만물이 한 하나님에 의해 그의 지혜를 통하여 창조되고 고정된다면,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그들의 다양성의 밑바닥에는 내재적 통일성이 놓여 있고, 이 통일성 안에서 그들은 공동으로 실존하게 된다. 그들의 통일성은 그들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통일성으로부터 온다. 이 통일성은 "지혜", "영"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린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재자로서 모든 노예화된 피조물을 위한 구원의 근거이며 실존의 근거가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의 보편성을 말한다.(고전 8:6) 그는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며 죽은 자들 중에서 최초로 다시 살아나신 분이다.(골 1:15,18) 

 

(2) 창조의 진화의 원동력으로서의 그리스도 : 그의 안에서 

창조는 태초의 창조로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화를 이루여 역사 속의 창조를 형성해 나간다. 태초의 창조를 넘어 계속적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몰트만은 진화론에 대한 거부로 인해 그리스도교 창조론이 지게 된 일면성과 오해를 지양하고자 한다. 기존의 태초의 창조는 완결되었고, 완전한 창조로 설명되어 왔기 때문에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계속적 창조와 역사의 종말에 완성될 새 창조를 간과했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하나님과 세계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과 역동성, 역사의 새로움,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개방성이 배제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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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조의 모든 과정의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 : 그를 향하여 

창조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창조의 완성은 오직 종말론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고 본다. 시간의 마지막에 모든 시간적 사물들에게 동시적으로 일어날 새 창조의 영원이 종말론적이다. 즉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그 무엇도 잊지 않고 상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의 완성은, 또한 구원의 활동은 진화에 역행하여 일어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서로 역행하는 두 가지 일을 행하시는 분인데, 하나는 되어감 속에 있는 그리스도요, 다른 하나는 오심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이다. 전자는 진화의 발전적 나아감이요, 후자는 진화에 역행하여 일어나는 구원 활동으로서 진화에 의해 희생된 모든 것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전자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요, 후자는 미래에서부터 오는 종말론적인 것이다. 창조의 목적론은 창조의 종말론이 아니다. 과거에 있었고 지금 있으며 미래에 있을 모든 것의 새 창조가 종말론적인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완성 파루시아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항목으로 종말론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나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그리스도론의 결론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완성으로 구성하고 있다. 파루시아는 예수의 길의 완성이다. 파루시아는 “되어감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노정이 목표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구원의 사역이 완성된 것을 의미하며, 길로 상징되는 메시아적 차원의 그리스도론의 완성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이 파루시아로 완성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몰트만은 구원을 십자가 사건에 국한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부활과 종말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의 죽음에서 일어난 구원 사건에만 관련을 맺게 되면 구원이 일면적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구원론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있던 구원의 의미가 알려지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속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 역사의 완성이다.  이러한 파루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이 세계로부터 도피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땅에 충실하게 만드는 소망이 된다. 그것은 비록 지금의 세계가 구원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있지만 장차 이 세계는 하나님의 새 창조를 통하여 영광의 나라로 변용될 세계이기 때문이다. 파루시아를 기다리는 삶은 오시는 이를 “선취함”속에 있는 삶이고 “창조적인 기다림”속에 있는 삶이다. 

 

나가는 말 :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평가 

 

1) 메시아적 차원의 그리스도론을 통한 긍정적 평가 

유대교의 잔재로만 여기고 터부시 해왔던 메시아적 차원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함으로써 삶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이다. 몰트만이 말하는 메시아적 그리스도론은 단순히 유대 왕국을 회복시키고, 유대의 왕이 되고자 했던 메시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구원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인간의 영혼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고 전체 인간 그리고 세상과 우주 속에 존재하는 만유에 대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인간의 영혼만을 돌보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의 고통과, 병, 그리고 배고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다. 이는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이의 배고픔과 아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그리스도론이 아까 생각한다.  

 

2) 여러 문제들과 학문들과의 대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의 1장의 ‘메시아적인 것’에서 그리스도론을 메시야적 약속을 담지하는 유대교와 구약 성서의 전통 속에서 재조명한다. 유대교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또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진화자 그리스도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서 자연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의 문을 확대시켰다. 또한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해 가능한 답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유구원론과 그리스도의 완성인 파루시아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이순신 장군의 구원의 문제에도 드디어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3) 부정적 평가 

이러한 그리스도론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이제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해 너무도 명쾌한 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순신 장군의 구원의 문제 또한, 신비로 남겨두기보다는 결국에는 만유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오실 새 창조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몰트만의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에 대해서는 성서적 검증과 전통에 비추어 살펴보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이다. 너무도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한 나머지 현실의 상황의 해결에만 갇히게 되어 현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1. 윤철호, 『예수 그리스도』, (한국장로교 출판사, 1997)

2. 몰트만, 『예수 그리스도의 길』(대한기독교서회, 1990)

3. 이형기, 『몰트만 신학』, (대한기독교서회,2002)

4. 스탠리그렌츠, 『20세기 신학』, (IVP, 2009)

5. 신성일, “몰트만의 그리스도론 연구”, 감리교신학대학원 석사논문, 1993

6. 김도훈, “몰트만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적 특성”. (장신논단, 2004.6) 

7. 김명용, “몰트만의 만유구원론과 구원론의 새로운 지평”, (장신논단, 2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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