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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신학 과제

구약주석 새로 보기, 예수님 닮기 생명 담기

by 보통목사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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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기, 생명 담기

 

 

머리말 

  내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목사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을 할 정도로 목사님에 대한 신뢰와 충성이 정점을 찍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목사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설교였다. 자세한 설교 내용은 잘 생각나진 않지만 그 목사님의 말씀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예수님을 닮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적지 않게 당황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른 성경을 펴 보았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수염을 길러야 하나? 아니면 머리를 염색해야 하나? 어린 나로서는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이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 후 예수님이 나온 사진이나 벽화 등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고 따라 하게 되었다. 후에 시간이 흐른 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어떤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 성품,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단지 어렸기 때문에 일어난 사소한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컸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아니 교회를 30-40년을 근속하신 장로님들조차도 말씀의 참 의미를 삶에서 살아내지 못하고 예수님의 벽화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보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을 닮기 위해 예수님의 사진을 보고 따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주석에서 주해로 가는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분해하고 파악하는 데는 혼을 쏟지만 정작 그 말씀이 어떻게 삶에 적용되고 어떻게 삶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몸 말

 1. 주해는

    주해는 성경과 삶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말씀이 단편적인 지식의 유희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기쁨과 회복으로 이어가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것이다. 주석을 위한 자료들은 너무나도 많다. 인터넷에서 주석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어마어마한 결과물들이 쏟아진다. 학교 도서관을 가 보아도 주석의 자료들은 우리가 평생을 가도 읽지 못할 정도의 양이 쌓여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주해에 관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주석에서 주해로 가는 다리는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 직접 그 다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삶의 간증이 될 수 있고, 대중들이 많이 보는 연극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명한 시인의 시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소리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있어서 주해의 작업은 선택이 아니요 필수이다. 특히나 성경공부가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에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인터넷을 켜면 성경에 대한 지식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성경 박사들이 많다. 누가 누구를 낳았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고, 누구는 몇 살에 죽고, 누구는 어떤 일을 당했고 등의 성경적인 지식들은 더 이상 목사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성도가 공유하는 정보가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요즘의 세대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이 주해의 작업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루하루 사는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고 붙들어야 한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시도해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 주해는 세속적이다?

    혹자는 주해의 작업은 세속적이라 폄하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음악이나 문학을 빌어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한다고 하여 다른 어떤 기법이나 자료들 없이 오직 성경으로만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바로 ‘성육신(incarnation)'을 안다면 주해의 과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3. 가장 좋은 주해 :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을 아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유일무의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지한 인간에게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된 것이다. 이 관계는 주석과 주해의 관계와도 같다. 주석의 단계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해의 단계는 성육신이라 할 수 있다. 구약을 통해 하나님은 율법의 기준들을 제시하셨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고 무지해서 이러한 율법들을 다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을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마침내는 성육신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인간에게 찾아와 주시고,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심으로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확정하신 것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율법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보려고 열심히 예수님 사진을 보고 생김새를 관찰했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가? 만약 그 설교에서 예수님을 닮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주해의 과정이 포함되었다면 그런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주해의 예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주해의 과정은 기독교의 예수님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작업이며, 설교자가 고민하고 익혀야 할 필수 요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왕대일 교수가 적용한 아날로지의 방법은 아주 적절한 방법인 것이다. 단지 설교를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게 하려고 쓰는 예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더욱 빛나게 하는 좋은 도구인 것이다. 『삶에서 그리스도가 빛나게 하십시오』의 책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책에서 쓰인 여러 가지 아날로지(책, 삶의 간증, 음악, 영화)는 그리스도를 가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말씀을 흐릿하게 하는 것인 아닌, 말씀을 더욱 또렷하게 한다. 여러 성서 해석 에세이 중 <교회가 방주인 까닭>을 택해 다시 한번 창조적 아날로지를 이루려고 한다. 

 

 4. 아날로지 _교회가 방주인 까닭

    이 에세이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말씀이다. 흔히 설교에서 접하기 힘든 본문인 창세기 6장 15절을 본문으로 정했다.‘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이 본문을 가지고 과연 어떻게 풀어 가실까 기대가 됐다. ‘포기하지 않는 노아의 믿음을 말하실까?’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실까?’이런 내 생각과는 교수님의 에세이는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노아의 방주의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다. 처음은 새만금 사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단순히 사람만을 위한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생명을 위한 방주임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제까지 우리는 노아의 방주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살림으로만 생각했지 방주 속에 들어갔던 수많은 동물들과 생명체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명 살림의 방주를 말씀하기 위하여 새만금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이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 단순히 사람만을 위한 세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짧은 글이나 이야기들은 말씀을 더욱 풍성하고 빛나게 했다. 그렇다. 방주는 분명 살림의 방주였다. 교회가 방주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방주인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이후에 교수님은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 과제부터 제시하시면서 삶으로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신다. 말씀이 성육신 되어 우리의 피부에 닿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5. 창조적 아날로지 _예수님 닮기, 생명 담기 

    이번 한 해는 참으로 별나게 지냈다. 100여 년 만에 온 폭설, 그리고 엄청난 더위, 수시로 내리는 국지성 폭우 등은 다시금 자연의 무서움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이 파괴됨으로 나타나는 이상 기후라고 한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구의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앞으로 더 큰 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듣는다. 이 세대에서 교회가 진정으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는 앞서 왕대일 교수님의 에세이에서 교회란 생명을 담는 방주임을 알았다. 인간의 구원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교회의 임무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모든 믿는 자의 소망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가는 것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큰 방주에 단지 사람 8명 만을 태우고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고, 그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마치 머리스타일만 따라 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 생각했던 어렸을 때의 나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측량할 수도 계량할 수도 없는 사랑의 방주를 주신 것은 나만이 아니라 내 이웃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담으라고 주신 것이다. 이 사랑의 방주에 꽉꽉 채워 넣자.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공기도 바다도. 

예수님을 닮는 것, 바로 생명을 담는 것이다. 

 

나가는 말

  모처럼만에 즐겁게 리포트를 써본다. 어렸을 때의 재밌는 이야기들과 교수님의 에세이, 그리고 창조적 아날로지까지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지니 너무도 재밌는 과제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오직 그리스도가 빛나게 하는 것이었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왕대일 교수님이 쓴 『삶에서 그리스도가 빛나게 하십시오』라는 책은 어쩌면 말씀 외의 내용과 정보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방법이고, 말씀과 세상이 소통하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이야기들에서 그리스도가 빛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해도 이와 같아야 한다. 어떤 설교는 듣고 나면 예화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는 잘못된 주해요,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가 빛나게 해야 한다. 삶의 체험을 쓸 때에도,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할 때도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빛나게 하는 다리 역할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설교하는 교회의 아이들은 적어도 예수님을 닮기 위해 예수님의 사진을 뒤적거리게 하진 않게 할 것이다.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으로 말씀에서 삶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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