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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신학 과제

기독교와 사형제도

by 보통목사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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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서에 나타난 성서 윤리를 통해 본

사형제 death penalty    

 

목 차 Contents



들어가는 말 


본  론 
1. 망원경으로 보기 _ 율법서에 나타난 성서윤리, 사형제에 대한 일반적 진술  
   1) 매스턴 책에 나타난 율법서와 성서윤리 
   2) 왜 사형제인가?  
   3) 사형제 논쟁 
   4) 사형제의 역사  
2. 돋보기로 보기 _ 사형제 존치론에 대한 윤리적, 성서적 근거
   1) 사형제 존치론에 대한 윤리적 근거  
   2) 사형제 존치론에 대한 성서적 근거 
   3) 사례  
3. 돋보기로 보기 _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 성서적 근거
   1)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 근거  
   2)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성서적 근거 
   3) 사례
4. 거울로 보기 _ 권위와 인권을 통해서 보는 우리의 입장 
   1) 권위
   2) 인권 


나가는 말 _ 존치와 폐지를 넘어 

 

들어가는 말 

   성경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그리고 긴 호흡으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따지게 되는 문제는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잔인성이다.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율법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율법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하나님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혹자는 구약은 반드시 신약의 빛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마르시온이 범한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구약은 실패한 인간들의 이야기이지, 실패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이번 발제를 통해 율법서에 나타난 성서윤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율법서의 성서 윤리가 오늘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형제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알아보겠다. 

 

 

본 론 

 

1. 망원경으로 보기_ 율법서에 나타난 성서윤리, 사형제에 대한 일반적 진술  

 

1) 매스턴 책에 나타난 율법서와 성서윤리 

<계약 법전>

B.C 17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함무라비 법전이 1902년에 발견되자 계약 법전 혹은 계약의 책이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전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함무라비 법과는 다른 계약 법전의 차이는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대상이 모세 혹은 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데에 있다. 이렇게 그들이 의무를 다해야 하는 그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 열국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1) 계약 개념의 근원과 중요성

계약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베리트(berith)란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여러 가지 협정을 표현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협정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창 21:27, 26:28),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말 2:14), 종족과 종족들 사이에서(출 23:32), 군주와 군주들 사이에서(왕상 20:34) 맺어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베리트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계약을 지칭할 때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프리젠은 ‘베리트’의 의미에 대하여 “어떤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both partner)를 포함하여 긴밀한 관계를 맺어 하나의 존재처럼 되게 하는 원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2) 계약 개념의 핵심

계약 사상은 계약 법전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성서 자체에도 핵심이 된다. 아이히로트는 계약 개념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 즉 하나님과의 유일한 관계라는 의미"이며 “계약 개념은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요약한 것이고 비록 계약이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계속 살아 움직이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명기에 기록된 모압에서의 계약과 같은 그 이후의 다른 모든 계약들은 시내산에서 된 계약의 갱신이거나 또는 확장이었다.

 

(3) 계약의 성격

개인과 맺은 계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는 책임을 하나님 자신이 떠맡으신다. 노아에게는 무지개가, 아브라함에게는 할례가 그 계약의 징표였다. 이와는 반대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과 맺은 계약은 그 백성에게 특별한 의무를 부여한다.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는 계약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들이 그 계약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약의 창시자이시고 일방적인 계약을 맺으시는 분이다. 즉 하나님만이 계약 조건을 주장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전 규율 혹은 조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영역 안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분의 뜻을 위해 살도록 성별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맸었기 때문에 이 계약 관계는 도덕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지켜야 할 모든 도덕적 의무사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약의 배후에 깔려있는 기본 사상은 법률상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4) 십계명과 계약

십계명은 "나는 너희를 애굽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 하나님이다"라는 인상적인 말로 시작한다. 이 표현은 압축된 형태로 십계명에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출20:5, 7, 10, 12). 야훼 그들의 하나님은 명령하실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은혜의 보답으로 그들은 복종해야 한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의 길잡이이며 근본적인 원칙들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의 원(circle), 또는 영역 안에 들어가게 되면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 사항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열 가지의 계명으로 배열되어 있는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고 두 번째는 인간 공동체 또는 이웃들 간의 바른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물론 십계명을 두 가지 유형으로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엄밀히 따져볼 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처음 네 개와 나중의 여섯 개의 계명들은 인간이 해야 할 의무에 대한 서로 보완적인 두 국면을 표현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은 “말로만 하지 말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그러한 자세를 취하라는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의 계명들은 생명(살인), 순결(간음), 재산(도둑질), 정의(거짓 증거)와 같은 “기본권”을 대변해 주는 “도덕적인 권리 장전”이라고 불리어왔다. “도덕 권리장전”다음에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이 있다. 이 계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계명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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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약 법전의 법규

구약성서 다른 곳에 나타난 법규들도 그렇지만 계약 법전에 있는 많은 법규들은 그 당시의 많은 민족들에게 공통적이었던 고대 법률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최소한 자기들의 법규에 그들 특유의 성격을 첨가시킨다. 예를 들면 시민법 혹은 사법, 도덕법, 엄격한 종교법 또는 제사법을 한데 혼합시키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현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법규란 하나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 법규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약 백성들에게 평등하게 구속력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계약 법전과 그 외 이스라엘의 법규들은 주변 민족들의 법전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아이히로트는 세 가지 분명하게 다른 점을 말한다. 1)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인간의 생명이 더 존엄한 것으로 되어 있다. 2) 죄를 벌함에 있어서 극심한 야만적 행위는 폐기한다고 되어 있다. 3) 법 집행에 있어서 신분적인 차별대우는 폐기하라고 되어 있다.

 

<성결 법전>

레위기에 있는 대부분의 중요한 윤리적 자료들은 성결 법 혹은 성결 법전(17장-26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결 법전에는 성결 사상이 유독 편만해 있으며, 이 사상은 구약성서 전체에도 상당히 파급되어 있다. “거룩한”(Holy), 또는 “성결”(Holyness)로 번역되는 단어는 구약성서 전체의 책 중 3/4에 이르는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레위기 외에 출애굽기, 시편, 이사야, 에스겔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어떤 저자는 명사, 형용사, 동사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 어원”qds”는,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사상이 구약성서의 핵심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성서의 문법상의 핵심”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1) 성결의 뜻

‘성결”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의 어원적 의미는 "자르다"이며, 그 핵심적인 사상은 "분리"이다. 즉 이 단어는 어떤 특성보다는 관계성을 더 시사하고 있다. 이 단어의 본래의 사상에는 분명히 윤리적인 요소가 없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단어에는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었다. 이 새로운 내용은 주로 그들의 하나님의 본성에서 유인된 것인데, “성결”은 “하나님의 특성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되었다.

성결 법전과 그 외 다른 곳에 하나님, 곧 거룩한 분께서는 자신의 성결을 자기의 백성과 나누어 갖기를 원하셨다고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계약의 원 또는 계약의 영역 안에 불러들이기를 원하셨다. 그들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성별 되었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목적에 영합되고 봉납됨으로써 거룩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로의 성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세상의 백성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야훼는 거룩하다. 너희는 내 것이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뭇 백성 가운데서 갈라내어 내 것으로 삼았다.”(레 20:26) 한 백성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함은 그들의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레 19:20)

 

(2) 성결의 윤리적 성격

이스라엘 민족은 “거룩한”, “성결”이라는 말에 인격적인 요소를 삽입시켰다. 이웃 백성들은 사물의 성결함을 강조한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작업이 성결이라는 개념을 도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첫걸음이요 연결점이 되었다. 하나님께로서 성별 되는 것과 그의 명령에 복종함이 결합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에서 볼 수 있다. “너희는 삼가 몸가짐을 깨끗이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야훼가 너희 하나님이다. 너희는 내가 정해주는 규정을 지켜 그대로 해야 한다. 너희를 거룩하게 해 주는 이는 나 야훼이다”(레 20:7-8)

 

2) 왜 사형제인가? 

최근 사형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 들어 더 빈번히 들려오고 있는 잔인무도한 범죄에 대해서, 국민들의 분노와  염려가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원춘, 조두순 등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 쳐지는,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들의 범행은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었고, 꽤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으로 여겨졌던 우리나라로 하여금, 다시금 그 판단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별히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 사형제 존치론과 폐지론에 대한 선택은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판단을 가늠해 보는 주제로도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율법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부터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해가던 때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통해 받게 된 백성으로서의 의무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율법서에 나타나 있는 조항들은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그 본문이 처해있는 상황과 문화가 너무나 달라, 반드시 그 가운데 해석 혹은 환원이 필요한 텍스트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찾을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은 예수님에 의해 '용서'에 대한 권고로 환원되고 있으며, 음행 중에 잡혀온 자는 반드시 돌로 쳐야 한다는 규칙은 예수님에 의해 "의로운 자가 있다면 그 율법을 집행해도 좋다."는 말씀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사형과 복수를 용인할뿐더러 권고하고 있는 구약 본문의 말씀은 언제나 신약을 통해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구약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그 안에 기본 정신을 발견함으로써 지금 우리 시대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형제도와 구약을 연결시켜보기로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에 대해 가져야 하는 해석의 태도, 그리고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여러 부분에 걸쳐 사형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율법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형집행은 어떠한 프로세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우리 조는 매스턴처럼 구약을 연구함을 통해 그 정신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는 잠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이 작업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3) 사형제 논쟁 

최근 박근혜 대선 후보의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으로 사회가 뜨겁다. 또한 사형제 폐지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주장하면서, 다시 한번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파렴치한 성범죄'와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인해 이 논란은 점점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성범죄자의 경우에는 재범률이 높아서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교계 내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진다. 2005년 8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사형제도 존치론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반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는 사형제도 폐지론을 주장했다. 존치론과 폐지론의 근거는 똑같은 성경이었다. 우리 조는 특히 사형제를 지지하는 본문으로 많이 쓰이는 구약의 율법서를 통해 우리가 성서의 메시지를 한정짓고 재단하는 것이 아닌, 성서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4) 사형제의 역사 

(1) 고대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거의 모든 사회에는 사형제가 있었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BC 1750년 경)에서는 부패한 관리, 도적질, 다양한 성적 범죄를 포함하는 25가지 죄목에 대해서 사형을 명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도 BC 1500년부터 사형에 대한 규례가 있었고, 히타이트 법전(BC 1400년)에서도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형벌제도는 신의 명령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국가 반역죄, 폭력적인 위헌의 시도, 계획된 살인 등에 대하여 사형을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로마시대 초기에는 군대에서만 사형이 있었는데, 후에 로마제국에서는 사형제가 일반화되어서 사형제가 범죄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서 십자가형, 참수형, 화형 등의 방법으로 공중 앞에서 처형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2) 중세 

로마 치세 하에 초기 교부들은 사형에 대해 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인 예로 터툴리안, 암부로스, 락탄티우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무고히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부당한 사형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은 아주 조심스럽게 국가가 어떤 특정한 범죄자들을 사형에 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시사했다. 중세의 최고 신학자로 여겨지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특정한 죄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형을 시행할 수 있다고 논의했다. 또한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루터는 특히 농민 전쟁과 관련하여 로마서 13장 4절과 칼의 권세를 인용하면서 “이교의 통치자들도 형벌할 수 있는 권리와 권세를 가진다”라고 말했고, 칼빈도 하나님의 법은 “죽이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살인자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니, 입법자 자신(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자들(정부 관리들)의 손에 모든 살인자들에 대해서는 칼이 휘둘러지게끔 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논의하면서 사형제를 지지했다. 

 

(3) 근대

근대에 들어서는 1764년에 베카리아(1738-1794)가 익명으로 쓴 <범죄와 형벌에 대하여>에서 사형 금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주장한 이후 그 영향으로 투스카니에서 사형이 폐지되었고(1786), 오스트리아에서도 폐지되었으며(1787), 베네수엘라(1863), 산마리노(1865), 그리고 코스타리카(1877) 등에서도 사형제가 폐지되었다. 사형폐지론은 영국에도 영향을 미쳐서 1860년대에는 190여 종의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언도하지 못하게 했다. 1969년 12월 16일에 살인에 대한 사형이 영구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하원이 결정하였고, 1998년에 전적으로 폐지했다. 2008년 국제 사면 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을 완전 폐지한 나라가 95개국,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폐지국이  35개국, 사형존치국은 58개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폐지국으로 1997년 13명의 사형수를 사형한 이후로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2. 돋보기로 보기  _ 사형제 존치론에 대한 윤리적, 성서적 근거  

 

1) 사형제 존치론의 윤리적 근거  

(1) 인과응보적 응징 : 인간이 죄를 지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 정의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요건이다. 이는 사형제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함무라비 법전 등의 고대 지혜뿐만이 아닌 아퀴나스나 칸트와 같은 중세와 근대의 철학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2) 범죄에 대한 일반적 예방의 효과 : 존치론자들은 사형 제도의 폐지는 곧 주요 범죄의 증가로 직결될 것이라는 의심을 가진다. 만약 사형 제도가 없다면 많은 범죄자들은 자신이 받을 처벌에 대하여 궁극적인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곧 범죄율의 증가로 직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종신형보다 더 인간적이다 : 영국의 저명한 인도주의적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인데, 밀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사형제 존치를 주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형이 무기징역보다 덜 고통스러운 형벌이기 때문이다.

 

(4) 납세자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준다 :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한정된 재화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 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는 시대사조는 사형 제도의 존치를 더욱 지지한다.  

 

(5) 사회의 안전 보장과 공공복리를 담보 : “인간이기를 포기한 금수적작태”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형은 결국은 사회의 안전과 복리의 보호 및 증진이라는 사회적 목표와 일치한다. 이러한 사고는 루소 류의 사회 계약론과 다윈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형제 존치론의 성경적 근거  

(1) 창세기 9: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사형제 존치론에서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경구절이다. 이는 2005년 한기총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사용되었던 본문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신정통치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준 것이 아니며, 노아 홍수 후에 온 인류에게 주신 말씀으로 단지 믿음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성’보다는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성’을 갖는다. 

 

(2) 레위기 20장  

다른 어떤 성서보다 구약의 율법서에는 사형을 지지하는 본문들이 많이 있다. 

살인죄(창 9:6, 출 21:12, 민]35:16-21) 부모를 거역하는 죄(출 21:15) 부모를 저주하는 죄 (출 21:17)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레 24:14-16,23) 안식일을 범하는 죄 (출 31:14, 민 15:32-36) 마술을 행하는 죄(출 22:18) 점치며 이적을 행하는 죄(레 20:27) 다른 이를 실족케 하는 종교 지도자의 죄(신 13:1-5,18:20) 간음과 간통죄(레 20:10-12, 신 22:22) 처녀가 결혼 전에 통간한 죄(신 22:20-21) 총각이 유부녀와 통한한 죄(신 22:23-24) 성직자의 달이 매춘을 한 죄(레 21:9) 유부녀를 성폭행한 죄(신 22:25) 짐승과 교합한 죄(출 22:19) 우상숭배의 죄(출 22:20, 레 20:1-5, 신 17:2-7) 근친상간의 죄(레 20:11-12,14,19-21) 동성애의 죄(레 20:13) 어린이 유괴의 죄(출 21:16) 거짓 증언의 죄(신 19:16,19) 법정을 모욕한 죄(신 17:8-13)   

 

레위기 20장을 중심으로 사형제 존치론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겠다. 

레위기 20장은 여러 가지 위반에 대한 벌을 강조하면서, 18장을 보충하고 강화한다. 이 장에 규정된 범죄는 사형에 해당된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형의 죄목들을 알려주시고, 명령하신다. 누구든지 ~ 죽으리라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본문은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는 본문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이는 계약 법전과 성결 법전과도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자는 사형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악이 제거되도록 했다. 이는 구약적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온 세상의 목전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규례이다. 

 

3) 사례  

(1) 강호순 : 2009년 1월 27일에 2008년 12월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추가 수사에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처음에는 연쇄 살인을 부인하다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군포 여대생을 포함해 7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2) 유영철 : 2003년 9월 11일 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은옥(72세)과 부인 이덕(67세)을 살해했으며, 그해 10월에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은순(82세) 등 일가족 3명을,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준희(60세)를 살해했다. 2004년 한 해 동안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1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유영철은 12월 13일 1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 이어 2005년 6월 13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3) 오원춘 :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은 2012년 4월 1일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서 조선계 중국인 남성 우위안춘(중국어: 吴原春, 병음: Wú Yuánchūn, 1971년 11월 ~ )이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한국인 여성 회사원 곽모양(1984년 ~ 2012년 4월 2일)을 집으로 납치하여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낸 토막 살인 사건이다. 

(4) <신문사설> 어린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경남 통영에서 지난 16일 아침 등굣길에 사라진 한아름 양(초등학교 4학년)이 실종 엿새 만에 끝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한양 가족이 사는 마을에서 100m가량 떨어진 이웃 마을 주민으로, 6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4년간 복역한 전력이 있는 전과 12범인 40대 남성이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한양을 자기 트럭에 태워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하려 했으나 반항하자 살해했다고 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행각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범인이 성폭행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알았더라면 사건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범인이 과거 성폭행을 저지른 시점은 2005년으로 개정 성폭력 특례법이 시행된 지난해 4월 이전이어서 신상이 공개되는 성인(만 19세 이상) 대상 성범죄 전과자 리스트에서 빠져 있었다. 

혹자는 가해자 인권을 거론하지만 잠재적인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우(愚)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 

범법자의 인권 운운하기에 앞서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불특정 다수 약자들의 삶이 보호받아야 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3. 돋보기로 보기  _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 성서적 근거 

 

1)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 근거 

(1) 인과응보적 응징? : 사형제도는 개인 대 개인 간의 문제 해결이 아닌, 국가라는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인과응보 사상이 원칙적으로 적용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또한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법관의 오판 가능성과 정치적인 힘의 개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에 붉어진 인혁당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범죄에 대한 일반적 예방의 효과? : 폐지론자들은 실제적인 통계자료들을 인용하여 사형 제도의 폐지와 범죄율의 증가 사이에는 아무런 직접적 연계성이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대부분의 살인(62%)이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하지 못하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과 그 나머지, 38%의 살인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안에서 계획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통계자료를 들어 주장한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반복되는 사형 집행은 도리어 면역 효과를 발생케 하여, 생명경시 사상을 범사회적으로 조장한다고까지 주장한다. 

 

(3) 종신형보다 더 인간적이다? : 이는 언제 집행될지 지약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불안과 공포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주장이다. 사형수와 종신형을 사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실제로 관찰한 사람들은 밀이 주장하는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인도주의적인 형벌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사형 제도는 사형을 당하는 죄수의 생명권의 침해일 뿐 아니라 사형 집행인 라든가 사형 선고인, 사형 집행 확인인 등의 인간의 존엄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 납세자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준다? : 모범적인 시민들을 보호하고 돌보기에도 부족한 국민의 혈세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금수와 같은 존재가 소비하도록 하는 것은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국민경제의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존치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라면 생산력이 떨어지는 모든 사람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가시적인 생산력은 발휘하지 못하면서도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노인이나 불구자는 어떠한 운명에 처해질 것인가?

 

(5) 사회의 안전보장과 공공복리를 담보? : 사형제도의 존속과 범죄율과는 상관관계가 없음이 통계자료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사형 제도를 존속시킨다고 해서 사회의 안전이나 공공복리를 보장한다는 주장도 타당성을 잃는다. 도리어 사형제도로 인해 생명경시 사상이 사회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2) 사형제 폐지론의 성경적 근거  

(1) 창세기 4장 : 가인의 이야기   

창세기 9장을 근거로 사형제 존치론을 주장한 사람들이라면,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가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죄를 저지르지만 하나님은 가인을 살리시고 심지어 그를 사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표징을 주시기까지 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 4:15) 

이 구절에서 나오는 히브리어“표”(오트)는 매우 오랫동안 오해되어 온 구절이다. 이 표현은 악행을 나타내는 낙인이 아니고, 그것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기호이다. 그것은 결코 가인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아니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철저하게 살인자 가인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창세기 9장과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거울로 보는 작업을 통해 살펴보겠다.  

 

(2) 출애굽기 20장 : 십계명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히브리어 동사 “살인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정황에서 “살해하다”를 뜻하지만 정당하게 기소된 살인자의 처형(민 35:30)뿐 아니라 고의성 없는 살인(신 4:41-42)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칼뱅은 십계명 설교에서, 하나님이 살인을 금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별로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추기 위해 거칠고 투박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누구든 무지를 핑계로 자신을 변명하려 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어떤 일이 너무 모호하거나 어렵게 보인다면, 우리가 실패할 때 “그건 너무 고상한 데다 난해하기까지 해서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거나 그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러한 핑계에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어린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하겠다고 작정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은 요약해서 “살인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사형제 폐지론의 가장 분명한 성경적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한 번의 긴장관계를 만나게 된다. 바로 앞에서 사형제 존치론자들이 근거로 사용했던 레위기 20장과의 긴장관계이다. 이 역시 거울로 보는 작업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3) 사례   

사형제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오판’과 ‘악용’의 가능성이다. 사형을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것이 인간이므로 인간이 지닌 한계성은 언제나 오판과 악용의 소지가 있으며, 역사적 사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 사형이 악용된 사례 : 인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슬픈 역사 중의 하나로써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할 정도의 희대의 정권에 의한 사법 살인이었다.

유신 체제의 시작과 김대중 납치 사건 등, 이 시기 대한민국 국민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고, 국가 권력은 희생양과 그리고 그 힘을 과시해야 할 필요를 가졌다. 이때 일어난 것이 인혁당 사건이다. 

1. 민청학련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며 담화를 발표하고 긴급 조치 4호를 발표

2.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가 있으며 민청학련의 국가전복을 지휘했다고 발표 

3. 당시 인혁당 재건위라는 실체가 없었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임

 - 21명의 관계자 중 8명에게 사형을 선고, 7명 무기 징역, 6명에게 징역 20년을 선고

4. 1975년 4월 8일에 대법원에서 판결 확정

5. 18시간 후 8명에 대한 사형 집행

6. 2005년 국정원 진실위 인혁당 사건은 조작

7. 2007년 1월 인혁당 사건 재심 무죄 선고

 

(2) 사형이 남용된 사례

 6.25 당시 한강교 폭파 사건의 최창식 대령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총살당한 지 14년 뒤에 무죄가 밝혀졌다. 

 1966년, 군산 전당포 강도살인 사건의 김홍조(당시 35세)는 주범인 김정일의 강도행각 중 밖에서 망을 보다가 도주했는데, 공동정범으로 몰려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의 형 집행 30분 전에 처형된 주범 김정일이 죽기 직전에 “김홍조는 죄가 없다. 모든 것은 다 내가 했다”라고 거듭 주장한 것으로 보아, 그의 형 집행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만일 그들이 ‘돈 없고 가난하고 못 배워서’ 사선 변호사 구할 형편이 못 되지만 않았어도 극형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이만큼 정상 참작의 범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며, 오판의 사례도 많다.

이와 같이 무엇보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난한 사람이나 유색인종들이 다수를 차지해 왔다는 점에서 사형제도는 사회 경제적인 권력 구조에서 소외된 이들이 범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그 모든 책임을 구조적 악이나 사회 모순에서 보지 않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공정한 절차와 과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현대 국가들은 사형 집행 과정에서 검사와 판사만이 아니라 사형 집행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공식적인 살인’ 행위에 참여시키는 비인도적 절차를 피할 수 없다.

 

4. 거울로 보기 _ 권위와 인권을 통해서 보는 우리의 입장 

 

1) 율법서에 나타난 권위와 인권   

우리는 앞서 사형제 존치론자와 폐지론자의 윤리적 성서적 근거들을 통해서 이 두 주장이 분명한 근거들 위에 세워졌음을 확인했다. 모두 뚜렷한 윤리적, 성서적 근거 위에 세워진 주장이라는 것이다. 우리 조는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사형제의 존치론 혹은 폐지론의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두 입장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윤리적 개념들에 대해 논하고 이를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1) 권위 

앞서 존치론과 폐지론의 사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윤리적 개념은 바로 <권위>이다. 즉, 누가 살인을 명령할 권위가 있냐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공공의 이익 혹은 사회계약설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는 폐지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권력의 남용 혹은 오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성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이 권위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답을 하고 있을까? 

 

성경을 통해 : 앞서 우리는 창세기 9장 노아 시대 때의 말씀과 4장 가인에 대한 말씀 그리고 레위기 20장과 십계명 사이에 흐르는 긴장과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말씀에서는 사형을 말하고, 어느 말씀에는 사형을 금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에서 우리 조는 말씀에 나타난 사형의 <집행자> 즉, <권위>에 집중하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정당한 사형이 가능했던 이유는 구약 시대의 왕정 이전 혹은 왕정 이후 시대는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있었던 사회제도였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정의와 잣대가 존재했고 또 그것이 인정되었고, 준수될 여지가 있었다. 하나님은 명시적으로 율법을 통해서 살인자와 같은 중죄인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하셨다. 심지어 하나님은 전쟁을 하도록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시기도 하셨다. 바로 모든 사형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창세기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출 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20: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우리 조는 이러한 본문들이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율법 시대의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한다 해도 적용의 어려움이 있는데, 바로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사형의 죄목은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사형의 대상은 살인뿐만이 아니라, 위증죄, 과실치사, 거짓 예언, 동성애, 근친상간, 부모에 대한 저주, 성전 기물의 무단 접촉 등을 포함한다. 만약 이 본문을 근거로 사형 제도를 찬성한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형을 명하시는 분도, 사형을 중지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일관성이 없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실까? 우리 조가 다음 문제였던 인권을 생각하며 잡은 본문은 출애굽기 20장의 말씀과 레위기 20장의 말씀이었다. 먼저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후에는 도리어 사형을 권장하시는 듯 한 두 본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인권 : 레위기 20장은 십계명의 강화판  

앞서 나눈 사례를 통해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윤리적 개념은 바로 <인권>이다. 인권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사형자와 피해자, 그리고 잠재적 피해자의 인권 모두를 말할 수 있다. 또한, 앞선 성서를 통해 살펴보았던 <권위>를 통해서도, <인권>이라는 주제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기준이 없고, 일관성 없이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성경을 통해 : 우리는 가장 극명하게 모순되는 출애굽기 20장의 <살인하지 말라>와 레위기 20장의 <반드시 죽일지니>를 통해서 성서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듣기로 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십계명에서의 살인하지 말라는 고의적인 살인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살인까지도 포함한다. 생명을 사랑하시고,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은 인간의 생명에 관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 구약은 실패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실패한 인간의 역사라고 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을 주시고,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늘 실패한다.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 이러한 죄는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일관성이 없는 하나님의 막무가내의 명령이 아니라, 도리어 실패한 인간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민수기 35장의 도피성을 통해서도 이러한 배려를 보여주신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레위기 20장은 하나님의 뜬금없는 사형의 종용이 아니라 도리어 십계명의 강화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하지 말라>의 다소 소극적 계명이 <죄에 대한 사형>이라는 적극적인 명령으로 강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줄곧 인간의 생명을 향해 있던 것이다. 

 

우리 조는 이번 발표의 범위였던 율법서를 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들어가는 말에서 말했듯이,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도 충분히 기본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의 말씀만으로는 여러 비판의 가능성과 한계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발표를 준비하면서 보았던 율법서의 정신은 <죽음>이 아닌 <생명>이었고 <살인>이 아닌 <살림>이었다. 이러한 전제로 구약을 읽어나간다면 구약과 신약 간의, 구약과 구약간의 말씀의 모순들과 긴장관계들의 상당 부분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나가는 말 _ 존치와 폐지를 넘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공동체의 관점으로 

 

   왜 최근 계속해서 잔인무도한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범죄 중 강호순, 조두순과 같은 사람들에 의한 사건 이외에도 청소년들에 의한 범죄 또한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신촌에서 한 대학생이 청소년 두 명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범죄 프로파일러들은 피의자들이 성장과정에서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고 그 경험이 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일부 지역 강력범죄자의 가정환경, 학교생활 등 성장과정을 조사한 양형조사 보고서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강력범죄자들이 부모의 이혼, 외도, 불화,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으로 성장기에 고통을 받은 경우가 66.7%에 달했고, 학창 시절에 부적응,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경우도 67.2%에 달한다. 

 

매스턴이 말하고 있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중요한 사상 중 하나는 개인, 단체 또는 공동체에 관한 밀접한 관계 개념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공동체 의식이 특이하게 강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집단은 하나님 앞에서 보상을 모두 같이 받는다. 의로웠던 노아 한 사람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공동체적 인격"의 증거이다. 즉 현재 구성되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사람과 앞으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여 그 공동체는 한 개인으로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심판도 모두 함께 받게 된다. 가인과 아벨 간에 있었던 살인사건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벨에 대한 가인의 살인은 죄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또한 일어나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 사건으로 인해 전 인류는 복수의 저주 아래 매어있게 된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즉 성서는, 죄에 대하여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뿐더러 그 공동체에게 동시에 책임을 묻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력범죄가 범죄자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과 범죄자가 속해있던 공동체에도 그 요인과 그에 따른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잔혹한 범죄와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한 논의에서 빠져있는 담론은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단지 한 개인의 과오를 지적하고 그에 대해 처벌을 내리는 것은, 현재 표면적으로 나타난 문제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사회에 내재되어있는 수많은 위험성들에 대해서는 지적해내지 못하는 좁은 시야라고 생각한다.

 

사형제에 대한 논의와 함께 우리는, 처벌의 대상이 되는 그들에 대해 우리가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떠올려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함께 처벌의 대상으로서 아파하고 우리의 과오를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채로 사형 판결에 대해 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을 향해 손에 돌멩이를 하나 씩 든, 위선적인 자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도서

1. T.B. 매스턴 저, 『성서윤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2. 유경동 저, 『영화속의 신학과 인권』,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8)

3. 스탠리 하우어워즈, 윌리엄 윌리몬 저, 『십계명』, (복 있는 사람, 2007)

4. 강연안, 『십계명 강의』, (IVP, 2010)

5. 임성빈 저, 『21세기 책임윤리의 모색』, (장로회신하대학교출판부, 2002) 

6. 유경동 저, 『한국 기독교 사회 윤리의 쟁점과 과제』,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7. 임성빈 저, 『현대 기독교윤리학의 동향 1』, (예영 커뮤니케이션, 1997)

8. 박충구 저, 『기독교 윤리사Ⅰ』, (대한기독교서회, 2010)

9. 왕대일 저, 『21세기 설교 가이드 창세기』, (성서연구사, 1996)

10. 벤자민 팔리 편역, 『칼빈의 십계명 설교』, (성광문화사, 1991)

11. 존 헤나,드웨인 린지 저, 『Bible Knowledge Commentary 출애굽기 레위기』, 

   (두란노. 2004)

 

참고 Article 

 

1. 박충구, “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본 사형제도”, (신학과세계, 2010.12), 196-231 

2. 김정우, “사형제에 대한 성경신학점 관점”. (신학지남사, 2005.12), 37-54

3. 유재원,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신학지남사, 2011.12), 175-187

4. 정일웅, “사형제도와 인간의 생명”, (신학지남사, 2006.6), 16-32

5. 김상균, “사형제도에 대한 신학적 쟁점”. (한국법학회, 2008.8), 389-409

6. 이광호, “사형제도에 관한 기독교 윤리적 고찰”, (철학논총, 2001.10), 321-334 

7. 허호익 목사(대전신대 교수), “사형제도의 폐지와 준치, 어느 것이 복음적인가?”, 

   (목회자 신문 2005.10.22) 

8. 성기문, "하나님은 어째서 가인이 사형되는 것을 막으셨을까?“, (뉴스앤 조이 기고 칼럼)  

 

참고영상

<잃어버린 33년>, (EBS 지식 e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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