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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구약 성경

창세기 22장 주해

by 보통목사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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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1-19

약속으로 지켜낸 믿음

믿음으로 확증된 약속

 

1. 맥락 파악하기

본문은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중에 속해있다. 12장부터 시작해서 25장으로 마무리되는 마치 오디세이 Odessey와Odessey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 중에 본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서 망원경으로 보기도 하고 돋보기로도 보겠다.

 

1) 망원경 보기 : 12-25장에서 22장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렌스버그의 아브라함 이야기의 구조>

A. 데라의 계보 11:27-32

B. 아브람의 영적 여행의 출발 12:1-9

C. 외국에서의 사래와 아브람과 롯의 분리 12:10-13:18

D. 아브람이 소돔과 롯을 구조함 14:1-24

E. 아브람의 언약 : 이스마엘 예고 15:1-16:16

E' 아브라함의 언약 : 이삭의 예고 17:1-18:15

D' 아브라함이 소돔과 롯을 구조함 18:16-19:38

C' 외국에서의 사라 : 이스마엘과의 분리 20:1-19

B' 아브라함의 영적 여행의 절정 22:1-19

A' 나홀의 계보 23-25

 

계보와 영적 여행, 외국에서의 사라와 롯을 구하는 것, 또 언약과 후손의 예고를 순서대로 교차 대구적 구조로 풀어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구조이다. 데라의 계보로 시작하여 나홀의 계보로 끝나는 이 구조 분석은 실제의 이야기로는 아브람의 영적 여행의 출발에서 아브라함의 영적 여행의 마무리로 끝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구조분석의 중심에는 언약(E, E')이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람의 언약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바뀌는 대목은 흥미롭다. 이러한 구조에서 보았을 때, 오늘의 본문인 22장의 위치는 아브라함의 영적 여행의 절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아브라함의 순종-위기-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이야기의 형식이 12장의 이야기와 정확히 대구를 이루고 있다.

 

 

2) 돋보기 보기 : 창세기 12장과 22장의 비교

창세기 12장과 22장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교차대구를 이루며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구 분 12장 22장
A. 하나님의 명령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B. 아브라함의 순종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주신 곳으로 가더니
C. 상황의 위기 12:10-17
아브람과 사래의 위기
22:4-10
아브라함과 이삭의 위기
D. 하나님의 개입 12:17-20
하나님의 개입
22:11-14
하나님의 개입
E. 축복과 약속 12:2-3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22:15-18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A. 하나님의 명령 : 12장과 22장에 쓰인 “가라”(레크 레카) 동사는 오직 여기에서만 나온다. 또한 12

장에서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 22장에서는 네 아들과 네 사랑하는 독자, 그리고 이삭이 3중으로 반복되어 명령어로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B. 아브라함의 순종 : 결코 쉽지 않은 명령에서 아브라함은 순종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볼 수 있다.

C. 상황의 위기 : 12장은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한 위기이고 22장은 아브라함의 완벽한 순종으로 인한 위기이다.

D. 하나님의 개입 :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개입하심을 볼 수 있다.

E. 축복과 약속 : 복을 주며 큰 민족을 이루며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공통

적인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12장 3절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는 복이 22장 18절에는 ‘씨’가 포함됨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12장의 약속이 22장을 통해 성취되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 길에서 처음 약속을 주시고 또한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문의 구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명령에 순종하고 약속의 성취를 믿는 아브라함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3) 돋보기 보기 : 창세기 21장과 22장의 비교

21장 22장
하나님이 이스마엘의 배제를 명하심 (12-13) 하나님이 이삭의 희생을 명하심 (2)
음식과 물을 취함 (14) 번제의 재료를 취함 (3)
여행 (14) 여행 (4-8)
죽기 직전의 이스마엘 (16) 죽기 직전의 이삭 (10)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부름 (17)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부름 (11)
“두려워 말라” (17) “하나님을 경외하다” (12)
“하나님이 들으셨다” (17)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 (18)
“내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18) “네 씨로 별과 모래 같게 하리라” (17)
하나님이 그녀의 눈을 열어 물을 보게 하심 (19)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숫양을 봄 (13)
그녀가 아이에게 물을 마시게 함 (19) 그는 아들 대신에 숫양을 제물로 바침 (14)

21장과 22장의 유사성은 221절에 나오는 그 일 후에라는 말로 연결될 수 있다. 바로 22장의 이야기는 21장의 이스마엘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21장을 통해서도 쉽지 않은 순종을 했다. 그가 아끼는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광야로 쫓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쫓아냄은 아무런 대책이 없는 <버림> 혹은 <죽임>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22장에 나오는 이삭을 재물로 바치는 사건도 대책이 없는 <살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의 순종이었다.

 

4) 성서적 보기 : 성서에서 창세기 22장의 위치

성서 전체의 이야기에서 이 창세기 22장이 갖는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구약과 신약은 어느 것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구약과 신약이 하나의 경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주시는 하늘의 소리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구약에서 신약을, 신약에서 구약을 보아야 한다. 그럴 적에 구약은 전혀 율법이라는 말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이 더불어 울림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 읽은 창세기 22장의 본문은 신약의 여러 말씀들을 떠오르게 한다. 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형(typology) 이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typology)인 것이다. 본 페이퍼에서는 신약과의 연관성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으므로 몇 가지 특징들을 비교하는 것으로 하겠다.

 

A. 이삭을 내어놓는 아브라함과 독생자를 내어주는 하나님

B. 독자 이삭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C.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D. 모리아 산을 오르는 이삭과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

 

 

지금까지 우리는 창세기 22장의 맥락을 살펴보았다. 크게는 망원경의 시각으로 12장에서 25장에 이르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22장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고, 세밀하게는 돋보기의 시각으로 창세기 12장과 21장과의 비교를 통해 22장의 맥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서 전체의 관점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하나님, 이삭과 예수님을 비교해 보았다. 이러한 맥락을 전제로 창세기 22장을 세밀하게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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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읽기 (개역개정)

이제 창세기 22장의 본문을 읽어 내려갈 것이다. 우리 조는 앞에서 따로 본문의 어휘를 조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문 읽기에 꼭 필요한 어휘들만 쓰기 위해서이다. 본문읽기를 통해 중요 어휘,, 혹은 중요 표현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다.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 그 일 후에 : 21장과 함께 봤을 때, 그 일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는 일을 의미한다.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일 후에,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는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의 깊은 고뇌와 아픔을 느낄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시험하셨다. : 개역개정에 나온 ‘시험하시려고’는 원문으로 봤을 때는 ‘시험했다’라는 완료형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동사는 피엘, 3인칭 남성 단수의 완료형태로 쓰였다. 즉 ‘그가 시험했다’라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 독자 이삭 :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후임을 드러내 준다.. 동시에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드러내 준다..

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12장에서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아버지의 관계, 아브라함과 친척의 관계, 아브라함과 고향과의 관계를 결별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2장에서도 아들에 관하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으로서 <세 번>을 말한다. 12장의 예표, 메아리인 것이다.

 

4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1) 제 삼일에 :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사건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사흘은 아브라함의 여행기간일 뿐만 아니라 이삭을 바쳐야 할 것인지 숙고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이는 아브라함의 결정과 행동이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음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 기간을 3절에 걸쳐 짧게 보도한다. 반대로 6절부터는 슬로비디오처럼 늘여서 보도하고 있다.

 

5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1) 아이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 아들”이라 부르지 않고 “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볼 수 있다.

2) 우리 :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개역개정 성경보다 우리라는 단어가 훨씬 강조되고 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이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석하기보다는12장과 21장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해석할 수 있다.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1)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A. 첫 번째 해석 :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제물로 삼아 죽여야 하는 흉기는 자기가 들고 간다.

아들에게는 나무 짐만을 지게 한다. 이 길의 마지막에도 아들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B. 두 번째 해석 :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르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산을 오르는 예수님

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C. 세 번째 해석 : 이삭이 죽임을 당하는 해석에서, 자기가 자기 몸을 사르게 될 나무를 메고 가게 된다.

이러한 처지는 바로 <비참>한 처지이다. 내가 지금 나를 태우게 될 나무를 내가 메고 간다는 것은 처참하고 처량하다. 이삭의 운명이 비애, 비참하다. 그런데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웃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웃음은 행복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즐거움과 행복이지만, 그 길은 비참인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대조이다!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1)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아케다) : 결박하다는 히브리어로 아카드인데,, 구약성서에서 본문에만 등장하는 단어이며, 손과 발을 묶은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교 전승은 22장을 아케다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아카드에서 나온 말이며, 이삭의 결박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1절에서 “아브라함아”라고 부르는 호칭이 한 번 쓰이고 있는 점을 비교해 보면, 긴급하게 두 번 부르는 것은 긴박성을 말해준다.

 

18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 네 씨로 말미암아 : 12장의 약속의 말씀과 비교해 보았을 때, 씨라는 단어가 22장의 약속의 말씀에 추가로 등장한다. 조금은 막연했던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씨인 이삭을 통한 약속으로 구체화되면서12장의 약속이 성취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21장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임을 알 수 있다.

 

19절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1) 그의 종들 에로 돌아가서 : 5절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이 빛나는 순간이다. 아브라함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 약속의 성취로 확증된 것이다.

 

※ 같은 장소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급

2절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3절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니

4절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절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은 <시험의 장소, 고통스러운 장소>였지만, 그 갈등을 이겨내고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준비된 여호와의 산>이 되었다.

 

※ 22:1-10에 반복되는 단어

5절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6절 두 사람이 동행하니

8절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함께”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다.

 

 

3. Composition

Ⅰ.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명령 : 갈등의 시작) 22:1-6
  A.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응답 22:1
  1. 하나님의 부르심 22:1a
  2. 아브라함의 응답 22:1b
  B. 하나님의 명령과 아브라함의 순종 22:2-6
  1. 하나님의 명령 22:2
  2. 아브라함의 순종 22:3-6
     
X.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아브라함의 순종 : 갈등의 절정) 22:7-10
  A. 이삭의 물음과 아브라함의 대답 22:7-8
  1. 이삭의 물음 22:7
  2. 아브라함의 대답 22:8
  B.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실행 22:9-10
     
Ⅰ’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 갈등의 해소) 22:11-19
  A. 여호와의 사자의 부르심 아브라함의 응답 22:11
  1. 여호와의 사자의 부르심 22:11a
  2. 아브라함의 응답 22:11b
  B.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과 아브라함의 순종 22:12-14
  1.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 22:12
  2. 아브라함의 순종 22:13-14
  C. 여호와의 사자의 축복과 아브라함의 행함 22:15-19
  1. 여호와의 사자의 약속의 말씀 22:15-18
  2. 아브라함의 행함 22:19

 

4. Performing : 단락과 단락 사이 묻기

 

(1) 이 본문은 크게 11-19절 말씀을 축으로 하는 교차 대구적 구조로 나눌 수 있다. 그럼 먼저 큰 구조를 나누는 근거부터 제시하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차대구적 구조인데,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X--Ⅰ' 이처럼 나누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공통된 대답이었다. 부르그만의 <부르심>과 <응담>의 구조를 조금 더 구체화시켰다.. 총 3번의 물음과 3번의 대답이 있다. 이 중 2번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1번은 이삭의 물음이다. 이 중 X축에 해당하는 이삭의 물음과 아브라함의 대답, 그리고 하나님 명령의 실행의 장면은 갈등의 절정에 해당한다. 앞과 뒤로는 하나님,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과 아브라함의 대답이 대구로 나와 있다. Ⅰ의 하나님의 명령으로 갈등이 시작되고, X의 아브라함의 실행으로 갈등이 절정에 이르다가 Ⅱ의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과 약속의 말씀으로 갈등이 해소됨을 알 수 있다.

 

(2) Ⅰ단락의 부르심과 응답의 단락과 단락 사이 묻기_ 약속으로 지켜낸 믿음

22장 1절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즉각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명령이 나온다. 그것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이미 본문 읽기에서 충분히 다루었듯이,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일이 있고 난 후에, 지극히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쳐야 하는 엄청난 명령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창세기에서 나타난 아브라함이라면 아마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창세기 18장에서 50명의 의인을 열명의 의인으로까지 낮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21장에서 하신 약속(이삭에게선 나는 자라야 네씨라 부를 것임이라)이 깨어질 수 있는 말이 되지 않는 명령인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5절에 나오는 <우리>라는 단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이다. 또한 <아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이미 마음올 이삭을 번제로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이삭의 생사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의 고백인 것을 잘 나타내 준다.아브라함이 믿음을 지킬 수 있던 이유는 바로 12장과 21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3) X단락의 부르심과 응답의 단락과 단락 사이 묻기 _ 믿음과 행동은 하나입니다.

22장 7절에는 아들 이삭과 아브라함의 물음과 대답이 나온다. 번제 할 어린양이 어디 있냐는 이삭의 물음에 아브라함은 8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한다. 8절 또한 아브라함의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2장 이야기의 절정이자, 12장부터 25장까지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오디세이의 절정인 9-10절이 이어진다. 아브라함은 정말 이삭을 바치려 한 것이다. 이 본문이 절정인 이유는 이삭을 죽이는 것이 곧 아브라함 자신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라 말씀하셨는데, 그 씨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은 곧 자기를 죽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그냥 지식적인 측면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림과 동시에 믿음의 행동을 한 것이다. 믿음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다. 믿음과 행동은 하나인 것이다.

  

(4) Ⅱ단락의 부르심과 응답의 단락과 단락 사이 묻기 _ 믿음으로 확증된 약속

절정까지 치달았던 갈등은 11절의 여호와의 사자의 다급한 부름으로 해소된다. 얼마나 급했으면 2번이나 불렀겠는가? 이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이삭을 죽이려는 시늉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자는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명령하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순종한다. 그리고 15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확증이 나온다. 12장에서 말씀하신 축복에 <씨>가 더해져,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생각해 점은, 15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의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이 말하는 소리에 집중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증을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으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4. Message

창세기 22장은 본문의 맥락과 구조 분석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갈등이 시작되어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려는 행동에서 갈등이 절정으로 이루고,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으로 갈등이 해소된다. 이러한 구조에 이름을 붙여보면 이 리포트의 제목이기도 한 <약속으로 지켜낸 믿음, 믿음으로 확증된 약속>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단순히 자신의 부요함과, 이삭의 생사가 아니었다. 만약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가 이런 것이었다면,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셨을 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하게 두 번이나 부를 정도로) 그럼, 이런 아브라함의 순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12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다시 21장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바로 이삭으로부터 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약속을 믿었다. 이 약속으로 아브라함은 22장의 시험에도 믿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다. 약속의 확증이다. 특별히 22장의 축복에는 <씨>라는 단어가 추가되는데, 바로 이삭을 말하는 것이다. 12장과 21장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확증되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바로 <믿음으로 확증된 약속>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될 수 있었던 이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가 자신의 욕심을 향한,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5절과 10절의 역설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말하는 로마서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해,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담대히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이삭을 죽여야 하는 제단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칼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고백하고 행하라!

그러면 번제 할 어린양을 친히 준비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다시 확증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천사무엘,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념 기념 성서주석 : 창세기1』, 2001, 대한기독교서회

2. 천사무엘,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념 기념 성서주석 : 창세기2』, 2001, 대한기독교서회

3. Wenham, Gordon J 저, 『창세기 1』, 박영호 옮김, 2001, 솔로몬

4. Wenham, Gordon J 저, 『창세기 2』, 박영호 옮김, 2001, 솔로몬

5. 왕대일 , 『21세기 설교가이드 창세기1』, 1997, 성서연구사

6. 목회와 편집부 엮음, 『창세기 :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003, 두란노

7. 왕대일, 『구약신학』, 2010, 감신대성서학연구소

8. 왕대일, , 다시듣는토라, 2008, 한국성서학연구소

9.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창세기>, 성서교재(주)

10. 유진 피터슨, 『메시지 : 모세오경』, 2011, 복 있는 사람

11. 장가람, “아브라함 내러티브에서 창세기 22장의 위치와 구속사적 의미”, 2008,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12. 서명수, “아케다이야기(창22:1-19)의 재해석”, 「구약논단」 14, 2003, 한국구약학회, pp7-26

13. 왕대일, “구약 속의 신약, 신약 속의 구약 : 아케다와 골고다”. 「신학사상」115, pp221-236

14. 천사무엘,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창 22:1-19“, 「설교자를 위한 성경연구」, pp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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