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0분 성경의 보통 목사입니다.
오늘은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순간 붙들어야 할 위로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위태롭던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후에, 무너진 성전과 빼앗긴 일상, 그리고 포로로 끌려가야 하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부른 “애도의 시”입니다. 앞에 있는 예레미야서가 위태롭던 남유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었다면, 예레미야애가는 망해버린 현실 앞에서 울며 탄식하며 애통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의 노래입니다.
설마 설마 하며 버텨오던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목숨처럼 여겼던, 다윗 언약과 성전 신앙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겁니다.
망할 것 같다와 망했다는 어감상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망할 것 같은 상황’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망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아직 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아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죠. 그 사람의 신체에 나타나는 변화나 증상들이 중한 병이 일으키는 증상과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당사자는 자신이 그 병에 걸렸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상과 몸의 반응들이 아무리 똑같아도 말이죠. 그러나 의사를 통해 병명을 들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순간 당사자는 ‘설마 아니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게되는 완벽한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나라가 멸망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꼈을 상황이 아마 이런 상황 아니었을까요? 쇠잔해져가는 유다의 상황을 보면서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설마 진짜 망하겠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레미야애가 3장의 상황은 다릅니다. 설마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조는 몰락했고,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으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불리던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망할 것 같았던 이스라엘이 정말로 망해버린 겁니다. 3장 18절입니다.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메시지 성경은 같은 구절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18.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모든 게 끝이다. 하나님을 믿어 봐야 헛일이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설마가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절망하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21절 이하부터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백이 등장합니다.
21.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아멘.
완벽한 절망과 멸망 앞에서 <슬픔의 애가>가아닌, <희망과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죠. 18절에는 소망이 끊어졌다고 하면서 21절에는 도리어 그것이 나의 소망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소망이 끊어진 것이 도리어 소망이 되었다는 고백,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들었던 생각이 <길을 잃어야 지도를 찾게 된다>입니다. 길을 잃기 전까지 지도는 그저 걸리적거리는 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길을 잃게 되면 그제야 지도의 진면목이 발휘되죠.
유다가 길을 잃기 전까진, 즉 멸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아직 길을 잃지 않았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나님보다는 지금까지 유다를 이끌어왔던 혈통과 전통, 그리고 건재한 성전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즉 그들이 의지하던 다른 모든 소망이 끊어졌을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도를 찾기 시작한 겁니다.
고난은 이렇게 우리가 의지한 모든 소망을 끊어내는 아픔을 주지만,
우리를 진정한 소망되시는 주님께로 이어 주기도 합니다.
혹시 길을 잃은 것 같은 고난과 절망 중에 계시다면, 그래서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아픔 속에 계시다면 오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끊어진 것이 도리어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헛된 소망이 끊어진 그 자리가, 진정한 소망되시는 주님을 찾는 복된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류시화 씨의 산문집에 보면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낡은 오두막 한 채를 발견합니다. 그 집에는 누더기 옷을 입은 부부와 세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집 주위에는 곡식도 나무도 자라지 않았고, 여윈 암소 한 마리만 근처에 묶여 있었습니다. 여윈 암소 한 마리는 그 가족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산모퉁이에 이르자 수도승이 제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스승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저 가족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재차 지시했습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젊은 제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스승의 말대로 암소를 절벽으로 데려가 밀어뜨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제자 혼자 그 길을 다시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묶었던 그 오두막 집을 찾아갔습니다. 지난 날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기 위해서였죠. 다시 찾아간 오두막 집은 놀랄 정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허름한 오두막은 아름다운 집으로 변해 있었고, 이전에는 없던 밭과 화단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제자는 몇 년 사이에 이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자를 알아보지 못한 주인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풀어놓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윈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가고 있었죠. 그것 말고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류시화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절벽으로 떨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남유다의 멸망은 암소와의 작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붙잡고 있던 여윈 암소를 하나님께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패망이 아니라, 진정한 회복의 서막이었습니다. 진정한 소망되시는 주님을 붙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길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주저앉아 울며 통곡할 때가 아니라, 지도를 꺼내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소망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곳곳에 담겨 있는 소망과 희망의 메시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여러분을 위한 메시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슬플 '애(哀)'자의 슬픔의 애가는 사랑 '애(愛)'자의 기쁨과 사랑의 애가로 바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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