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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구약 성경

무속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차이!

by 보통목사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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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0분성경의 보통목사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무속신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여러 차이들이 있겠지만

무속 신앙이 <신이 내린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신이 보낸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풀이하면, 무속 신앙은 자기가 있는 곳에 신이 내려오기만을 바라지만,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 보내신 곳으로 향해 간다는 것이죠. 

 

오늘 함께 살펴볼 호세아서 7장에는 겉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는 듯하지만, 그 속은 무속 신앙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나옵니다. 

 

호세아 7장 14절입니다. 

14.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나, 거기에 진실이 없다. 오히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한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빌 때에도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 빌고 있으니, 이것은 나를 거역하는 짓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진정성이 없는, 위선적인 부르짖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하고,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까지 빌고 있는 그 이유가 “더 많은 곡식과 포도주를 위한 것”이었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이죠. 

 

‘정성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이 말은 티비 속에 등장하는 무속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인데요. 신의 마음을 달래거나 신을 불러내기 위해선 '정성'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때론 그것이 돈이 될 수 있고 더욱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일 수 있습니다. 무당이 불러내는 신은 그 “정성”이 만족스럽게 채워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정성'이 채워지게 되면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행위'는 당시 바알 숭배를 비롯한 우상 숭배의 모습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몸을 찢어서라도 정성을 다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신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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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더 많은 정성' '더 극진한 정성'을 원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죠. 호세아서 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의 이유를 '정성의 부족'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대신, 2절에서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2.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10절에서 “돌아오지 않았다”에서 찾고 계시는데요.

 

10.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더 많은 정성이 아닌, 더 많은 생각과 더 확실한 돌이킴을 요구하고 계신 것이죠. 

 

처음에 무속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차이를 말씀드렸는데요. 무속 신앙을 잘 표현하는 말이 '신이 내린 사람'이라고 했죠.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든 신의 마음을 훔치려고 합니다. 사람도 아닌, 신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니 얼마나 정성을 다하겠습니까? 그래서 몸을 찢기도 하고, 침상에서 통곡도 하게 되는 것이죠. 언뜻 보면 굉장히 헌신적이고 신실한 믿음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모습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내가 살아온 삶의 선택과 방향, 나의 길에 대한 고집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그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내려주는 힘을 통해 내 상황과 욕구를 바꾸고 만족시키려하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두 가지 해법을 말씀하십니다.

생각 좀 하고, 돌이키라는 겁니다.

무엇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 또 하나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를 길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면 과감히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결단을 요구하시는 것이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는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극진한 정성'에만 취해 산다면, 우리는 절대 우리의 본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그저 정성만을 다하고 있다면 그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생각 못지않게 돌이킴 또한 중요한데요. 10절입니다. 

 

10.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저와 여러분은 신이 내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과 죄악의 자리에 머물러, 그곳에서 신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탐욕과 이기심과 죄악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을 향해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정성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생각과 돌이킴입니다. 생각 없는 정성, 돌이킴 없는 정성은 나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우상숭배에 불과함을 깨달으시고, 매일매일 길고 진지한 생각과 주저함 없는 돌이킴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성의 부족보다 중요한 건, 정상으로의 회복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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