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와 사막교부를 통해서 본
말씀대로 <살려고>했던, 말씀이 <살게 한>사람들
초대 수도원 운동의 큰 기둥인 성 안토니(이하 안토니)와 사막교부들의 삶과 신앙을 살펴보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치열한 <수덕virtue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에, 칭의론에 묶여서 믿음과 당연히 함께 가야 할 <수덕virtue의 삶>이라는 마땅한 일들을 조용히 덮어두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벌어지는 개신교와 목회자에 대한 비난의 원인은 바로 <믿음>과 <수덕virtue의 삶>의 부조화로 인한 불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페이퍼의 문제로 주어진 2가지의 문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안토니가 살았던 시대와 생애를 통해서 수도원운동의 출발점에 대해 알아보고,
두 번째는 사막교부의 문헌을 통해서 그들의 영성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문제 1 :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 _ 안토니의 생애를 통해서 본 수도원 운동의 출발점
먼저 안토니와 아타나시우스가 살았던 4세기의 상황을 살펴보고, 수도원 운동의 출발점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1) 로마의 박해 :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기까지 약 300년 동안 교회는 직접적으로 박해를 받거나 박해의 공포 속에서 지내야 했다. 박해시대에는 순교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데 가장 숭고한 형태로 여겨졌고 많은 신자들이 열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살고 있던 거주지를 버리고 피난처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그러므로 독신생활과 속세의 탈피 등 고행과 금욕의 생활이 순교에 의한 실제적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이라고 여겨졌다.
2) 로마의 기독교 공인 :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콘스탄틴 황제(306-337)에 이르러 국교로 공인된다.(313) 약 300여 년 동안을 계속적인 박해와 박해의 위협 속에 있을 때에는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죽음과 배교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긴박함과 절심 가운데서 신앙을 가졌지만 막상 평화가 보장되자 기독교의 변질과 세속화를 가져왔다. 순교를 영광으로 알아왔던 시대에서 순교가 필요 없는 시대로 급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답으로 나온 것이 바로 수도원 운동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안토니의 생애를 통해서 수도원 운동의 출발점을 알아보겠다. 그의 생애의 모든 근거와 이유는 바로 <말씀>에 있었다. 그의 상황과 감정과 문제들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수도원 운동의 출발점은 바로 <말씀>인 것이다. 안토니의 생애를 통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겠다.
안토니는 부모와 사별한 지 여섯 달이 채 되지 않았을 18살 혹은 20살 정도 되었을 때, 교회에서 복음서 낭독을 듣게 된다. 그는 즉시 교회를 나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여동생을 돌볼 것만 조금 남기고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남은 재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후, 수도생활에 전념했다. 그는 또한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는 말씀에 따라 노동을 하였고 자신이 벌어들인 것의 일부는 빵을 사기 위해, 일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는 끊임없이 기도했고, 그의 세심한 독서습관에 따라 성경의 어느 구절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고 했다. 안토니의 수도생활 중 겪은 특이한 체험은 마귀와의 싸움이었다. 마귀는 안토니의 육체의 연약함을 또한 음란한 생각 등의 상념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토니는 믿음과 기도와 금식으로 몸을 무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말씀으로 유혹과 싸움들을 이겨냈다. 안토니는 이러한 시험에서 이긴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마귀를 이긴 것은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도와주셨음을 담대히 말한다.
또한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해진다.”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생각하며 오로지 빵과 소금, 물만 마셨다. 어느 날 안토니는 엘리야의 생애로부터 삶에 대한 지식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묘지로 가서 수도생활에 전념한다. 이때에도 마귀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요동하지 않고 맞선다. 이때 하늘 지붕이 열리며 빛줄기가 내려왔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안토니야, 나는 여기 있었단다. 네가 애쓰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네가 잘 참고 물러서지 않았으니 나는 영원히 너를 돕겠고, 너를 온 세상에 알리겠다.”이것이 안토니가 처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건이다. 이때 나이는 35살이었다.
이날 이후 안토니는 사막을 향해 길을 떠난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길에 버려진 성채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다. 이십 년 동안을 혼자서 수도생활을 추구하며 지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행을 본받으려고 했다.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몸에 손상이 없이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는 병자들의 병을 고쳤고, 마귀를 몰아냈으며, 슬픔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고, 서로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화해시켜 친구가 되게 하였으며, 세상의 그 무엇도 그리스도보다 좋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또한 우리를 사로잡는 하나님의 사람을 마음에 새기도록 촉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둔의 삶을 시작하도록 권유했다. 그는 356년에 105세라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이 임박했을 때 그는 두 제자를 불러 자기 시체를 그대로 땅에 묻고 묻힌 장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그 이유는 성자와 그의 유물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당시의 좋지 않은 풍습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나타난 안토니의 영성에 대해 짧게 알아보겠다.
1) 하나님 사랑 :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요일 4:18)
2) 이웃사랑 : 우리의 생사는 우리의 이웃에 달려 있다. 우리가 형제를 얻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를 화나게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 범죄 한 것이 된다.
3) 겸손 : 나는 원수가 온 세상에 올무를 설치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어떻게 해야 저 올무들 사이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다. 그때에 겸손이 있으면 된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4) 기도 : 그는(안토니) 끊임없이 기도했는데, 쉬지 않고 은밀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문제 2 :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 _ 사막교부 영성의 특징과 성격
사막교부는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신앙을 전심으로 닮아가기 위하여 4세기에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틴, 아라비아 등지 등에서 모든 형태의 수도생활, 온갖 종류의 실험, 극단적인 일을 일으킨 운동이다. 철저한 단순함과 온전함이 사막 교부들의 목표와 목적이었다. 그리고 사막교부 역시 말씀대로 살려고 처절하게 자신의 욕망과 싸웠던 수덕virtue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다음으로는 사막교부들의 영성의 특징과 그 성격에 대해 알아보겠다.
1) 기도와 침묵 : 사막교부들의 삶의 중심은 기도이다. 그들은 기도에 관한 특별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들과 권고들을 통해 인격의 내면 깊은 곳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끊임없이 기도했으며 그들의 삶 전체가 기도 그 자체가 되었다. 사막교부들의 기도는 이성적이며 지적이고 현란한 어휘를 구사하는 기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간단하고 명확한 기도였다.
그들의 중요한 수도 방법 중에 하나는 침묵이다.
“말없이 생활하는 것이, 생활 없이 말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침묵에 의해 선을 행하지만, 후자는 말을 할 때조차 선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과 삶이 서로 일치할 때, 그것들은 완전한 철학이 됩니다.”
2) 이웃사랑 : 사막의 수도자들은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이웃사랑이 진정한 영성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웃사랑은 공동체적인 삶과 스승과 제자의 삶 속에서도 인격적이고 연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안토니의 말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이웃사람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형제를 얻게 되면 하나님을 얻을 것이며,
우리의 형제를 분노하게 만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한, 빠스톨 교부는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친구와 이웃을 위해 중요한 금식을 패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금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3) 겸손 : 사막 수도사의 겸손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은 겸손함으로써 오는 정직이다. 겸손은 자기 자신에 관한 정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의미한다. 겸손을 통하여 마귀의 속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강한 영성을 소유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시소에스교부의 말이다.
“지혜롭게 이탈에서 오는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은 성서의 모든 가르침을 완수한다.”
4) 신비적인 체험 : 그들은 많은 신비적인 체험을 하곤 했다. 그들에게 이러한 체험은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깊은 기도와 금식 속에서 대부분 일어난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연약해지고 정신적으로 혼미해지며 자신들의 생각이 죽을 때 가장 많은 계시가 일어난다.
마카리우스는 사막에서 기진맥진해 있을 때 마귀로부터 낙타의 등에 온갖 종류의 유익한 양식이 들어 있는 신기루를 만나지만 마카리우스는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즉시 땅이 낙타를 삼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5) 마귀와의 전투 : 아타나시우스는 수도사들의 삶을 해석할 때 영적인 여행이라는 말을 한다. 이들은 세상을 부인하고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내면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 속에서 그들은 악마적인 세력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적대를 당한다. 마귀적인 세력으로부터의 싸움은 사막교부들에게는 필연적인 것이다. 때론 이 싸움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도리 수 있다. 자신들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욕이야말로 가장 큰 싸움인 것이다.
한 위대한 은형제가 말했다. “사탄아, 너는 이처럼 왜 나와 싸우고 있느냐?” 이 말을 들은 사탄이 말했다.
“이렇게 심하게 나와 싸우고 있는 것은 바로 너다.”
결 론 _ 말씀이 <살게 한> 사람들
지금까지 안토니의 생애를 통해서 수도원 운동의 출발점에 대해서 살펴보고, 초기 수도원 운동의 영성을 사막교부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이 영성은 단순히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수덕virtue의 삶>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싸움이었음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책들과 논문들을 참고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들은 자신의 욕망과 의를 위해 고행의 모습만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수덕virtue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말씀대로 죽으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말씀대로 <죽으려고> 했었지만, 도리어 그 말씀이 이들을 <살게 한> 이유와 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 페이퍼의 제목처럼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말씀이 살게 한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내 삶에는 과연 이런 치열한 고민과 싸움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매일의 예배를 드리고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나에게 이런 수덕virtue을 향한 열심히 있느냐에 대한 물음말이다. 이번 초대수도원운동 세미나를 듣고, 또 이들의 영성을 배우게 되면서 받은 도전 중에 가장 큰 도전이 있다면 바로 수덕virtue에 대한 열망이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끝>이 아니라, 믿었으니 이제 믿는 대로 살아야 하는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내 인생의 수도원 영성의 출발점! 바로 지금이다!
말씀대로 살아보자. 아니, 죽어보자!
그러면 그 말씀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 아니, <살릴> 것이다!
Comment & Question
수도원 운동의 한계는 수도원의 특성상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찾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 신비한 체험들을 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결코 수도원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분은 직접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덕virtue의 삶이 단순히 자신을 위한 것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의 모습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질문 _ <수도원 운동>과 예수님의 <다른 사람을 향한 사역>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 대안을 웨슬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도서 및 논문
1. 아타나시우스 저,『안토니의 생애』, 안미란 역, 은성, 1993
2. 후스토 L. 곤잘레스 저, 『초대교회사』, 엄성옥 역, 은성, 2012
3. Ward Benedicta, 『사막교부들의 금언』, 이후정외 1인 공역, 은성, 1995
4, Norman Russel, 『사막교부들의 삶』, 이후정외 공역, 은성, 1994
5. 남주현, 아나타시우스의 신학과 영성-안토니의 생애를 중심으로, 감리교신학대학 석사논문, 2004
6. 한충일, 초기 수도원운동에 나타난 안토니의 영성이해, 감리교신학대학 석사논문, 1996
7. 구재본, 사막교 부의 영성과 삶, 감리교신학대학 석사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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