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κατα Ιωαννην)
1. 저 자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사도였던 요한이 저자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주장의 대표자가 웨스트코트인데 그는 이른바 “집중적 증명 방법”에 의해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대인이며, 그중에서도 팔레스틴 유대인이며 그중에서도 목격자이며 사도이고 사도 가운데선 요한이라”라고 주장했었다. 이런 주장은 한편으로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가설에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우선 파피아스의 전통에 따르면 저자는 “장로 요한”으로 전해지고 있는 데다가 사랑하는 제자를 저자라고 말한 요한복음 21:24는 요한복음의 본래의 일부가 아니라 후대의 첨가 본문이다. 더구나 세베대의 아들 요한을 “사랑하는 제자”로 생각하기 어려운데 이유는 갈릴리 어부 출신인 그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과 안면이 있었다는 사실(요 18:15)이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초대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일찍 순교당했기 때문에(행 12:1) 1세기 말경까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란과 더불어 최근에 와서 저자 문제에 관한 논의는 거의 확실한 결론에 이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교적 일치를 보아 가는 점은 요한의 저자가 1세기 말경에 살았던 익명의 크리스천이라는 점과 또는 요한복음이 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어떤 그룹이나 어떤 학파의 작품으로 볼 수 있고 또 여러 발전 과정을 겪은 마지막 단계의 작품이란 점이 다. 요한복음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이라고 볼 경우 우리는 대충 다음과 같이 그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요한복음이 “사랑하는 제자”의 구전 설교와 교훈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다음으로는 어떤 제자 혹은 친구가 사랑하는 제자의 설교를 근거로 하여 복음서의 초안을 기록했고 마지막으로 후대의 편집자가 여러 장을 보충적으로 첨가하여 확대된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요한복음이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읽히기 전에 몇 차례의 수정 작업이 더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정경 복음서들을 기록한 저자가 누군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다만 익명으로 복음서의 저자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는 노력 역시 희망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제자’는 요한복음을 최종적으로 생산하는데 기여하였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그의 교훈을 보존하였던 공동체 내의 지도자였던 역사적인 인물이었다고 본다. 이 공동체는 ‘사랑하는 제자’가 그들에게 전하여준 예수 전승들을 보존하고, 형성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작업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독교 그룹의 신학적 필요성에 답하기 위하여 요한복음과 서신을 궁극적으로 생산하였다.
2. 시 기
그동안 요한복음은 2세기 초의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소개되고 있는 발전된 형태의 신학이나, 사본 증거 상의 결핍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편의 발견으로 인해(Roberts Fragment) 요한복음 기록 시기를 앞당기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약성서 사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또한 그것은 우리에게 요한복음의 가장 늦은 가능한 일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복음서가 이집트까지 순환되고 알려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가장 늦은 시기를 100-11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구절들은 공동체와 유대 공동체 사이의 극도의 긴장감을 반영한다.(9:22, 12:42, 16:2) 아마도 유대교와 유대 기독교가 분열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대 지도력이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유대교를 재정립하고 재구성하려고 노력하였던 70년대 이후의 상황에 들어맞는다. 소위 후기의 기도 책들 안에 언급되고 있는 19개 가운데 12번째 축복인, ‘이단자들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축복’은 종종 이때의 회당과 교회 사이의 극도의 긴장의 증거로서 인용된다. 그것의 구성의 시기, 그리고 그것의 원래의 의도, 축복의 원래 형태에 관하여 규정하는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단자들에 대한 이러한 저주는 1세기 후반에 형성되었고, 단지 유대 기독교에 제한되지 않고, 여러 다양한 유대 그룹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믿어진다. 만약에 그렇다면 90-95년경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타난 많은 특성들은 70년 이전의 이른 시기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즉, 랍비로서의 예수에 대한 언급(1:38, 3:2,26, 6:25, 21:16), 여전히 건재하는 성전 건물에 대한 암시(5:14),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과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 사이의 경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료들, 이와 같이 소수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실제로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으며 시기를 예수의 생애와 사역에 매우 가까운 것으로 주장하여왔다. 유대인에 의한 기독교인의 축출(9:22, 12:42, 16:2)이 공식적으로 90년경에 있었던 랍비 가말리엘 2세의 기독교인에 대한 정죄 조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결국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는 일반적으로 90년경에서 1세기 말에 이르는 기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3. 기록 장소
기록 장소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교회의 전승을 따라서 소아시아의 에베소를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전승 자체가 후대의 것일 뿐 아니라 복음서 자체가 소아시아에서 기록되었다는 암시를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에베소를 기록 장소로 보기 힘들다. 더구나 요한복음의 자료가 언어와 사상에 있어서 비교적 고립되어 있고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이 전통적 견해에 일치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에베소는 초대 기독교의 중요한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학자들은 이집트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큄멜은 요한 사사이의 근거지가 알렉산드리아는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요한복음이 이그나티우스와 솔로몬의 송시와 유사성이 많다고 하여 학자들이 시리아를 기록 장소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쿰란 사본들 및 사마리아 특징들과 비슷하다는 점이 시리아 설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제 요한복음의 기록 장소를 위해 팔레스타인의 유대적 배경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런 입장에서 시리아는 종종 요한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거론된다.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곳은 강한 유대적 영향 하에 있었다. 또한 그곳은 헬레니즘의 영향이 더욱더 명백한 곳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시리아보다는 알렉산드리아를 선호한다. 그곳은 유대 헬레니즘의 중심지로서 요한복음 안에서 발견된 헬라철학과 구약성서 종교의 병합 사이의 유사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백하게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작품들 안에서 발전된 중요한 장소이다.
4. 목 적
이제 교회가 갓 설립되었던 이 당시의 성도들은 로마 정부의 핍박도 받았지만 유대교 및 당시 헬라 종교 철학으로부터 거센 교리적 도전에도 직면해야 하였다. 먼저 유대인 출신의 성도들은 주로 구약과 신약의 관계 그리고 유대교와 기록교의 관계의 미정립 문제로 큰 갈등을 겪어야 했다. 오순절 직후에는 예수를 믿는 교회 공동체와 유대 공동체가 별로 큰 문제없이 병존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갈등이 첨예하게 노출되었다. 그리하여 요한이 본서를 기록할 무렵에는 유대인 성도들이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그들이 전통적으로 속해 있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단호한 추방 조치를 당했고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들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이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과 동일함을 확인시켜야 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신약은 구약과 다른 것이 아니라 구약을 확장 계승한 것이며 주님의 성육신 강림으로 구약 시대가 신약 시대로 발전되었음을 확인시켜야 했다. 그리고 오히려 유대인이 구약 전체가 아니라 일부 내용만을 유대 민족의 입장에서 인본주의적으로 곡해하여, 바로 그 구약을 주신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구약의 내용을 성취하시고 새로 주신, 신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류에 빠진 것임을 변증해 줄 필요가 있었다. 한편 이방인 출신 성도들도 그 내용은 달랐지만 교리적 혼란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당시 로마 제국에 풍미했던 헬라 종교 철학의 한 유파인 영지주의자들로부터 주로 예수의 절대적 신성에 대한 도전, 아니면 제2위 성자이시면서도 타락한 죄인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시어 동시에 인간이 되셨던 주의 인성에 대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즉 헬라 사상에서 유래한 영지주의의 분파들로서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즉 가현설을 주장하는 케린티아파와, 그와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에비온파의 영향으로 우리 주 예수의 신인양성론에 입각한 당시 교회의 신학적 기반에 크게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초대 교회 당시 구약적 배경이 있는 유대 출신 성도들은 주로 우리 주님을 정점으로 한 구약과 신약의 관계,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도전을 그리고 구약적 배경이 없는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께서 동시에 가지신 절대적 신성과 인성의 어느 한 부분 곧 주님은 태초부터 세워진 구속의 원리에 따라 본래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성육신 하여 우리 구주가 되신 신인양성을 가지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도전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본서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20:31에서 밝힌 바대로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 하신 우리 구주 그리스도이심을 변증 하기 위하여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5. 주요 내용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1:1-18) :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성과 영원성이다. 즉 하나님은 영운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다른 어떤 것에 의해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만물을 창조한 절대 초월자이시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우리 구주 예수의 여러 속성 중 제2위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서답게 본서 서두에서 예수가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삼위일체이심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처럼 태초부터 계셨던 창조주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주께서 태초 첫 사람 아담의 타락 직후 세워진 구속의 법에 따라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 희생을 하사 인류를 구하실 구속자가 되시고자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배척한 자들과 영접한 자들이 있었음을 끝으로 성자를 통한 구속의 은총에 대한 찬양을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하나님 아들의 증거와 유대인들의 배척(1:19-12:50) : 본 단락에서 저자는 앞의 서론에서 선포된 바, 주께서 하나님 아들로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심과 관련된 증거들을 하나씩 비교적 연대기적 순서대로 제시한다. 먼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으로 소개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첫 네 제자의 증언(1:41, 50),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4:29) 등과 예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선언들과 함께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요한이 특별히 선정한 7대 표적을 차례대로 열거한다. 이 7대 표적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해 줄 뿐만 아니라 신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각 측면들을 밝히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적, 현세적 필요가 아닌 영적 필요와 종말론적 축복 곧 영생과 천국의 영원한 축복을 가져다주시는 분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런 증거들이 제시되었을 때 그에 대해 보였던 인간들의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의 이적을 직접 체험한 자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일부 이방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으나, 유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구약의 일부를 왜곡하여 만든 유대교적 교리에 젖어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자로 몰아 배척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배척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전개에 따라 점차 고조되어 갔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심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 아들의 가르침(13:1-17:26) : 앞 단락이 예수는 원래 성자로서 우리의 그리스도 구주라는 사실 자체를 공생애의 여러 기사를 통해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면 본문은 그런 예수께서 구속 사역의 최종 성취를 위해 받으실 십자가 수난을 눈앞에 두고 장차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로부터 재림 때까지 전 신약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될 교회를 설립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땅끝까지 세계 전민족에게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당신이 공생애 초기부터 특별히 선발하고 훈련시키신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이 죄인의 구속을 위함이라는 것과 그 이후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일련의 계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의 수난과 영광(18:1-21:25) : 예수의 체포와 심문, 십자가 수난과 부활, 및 부활 이후의 나타나심 등을 매우 긴박하게 기술해 간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증거 한 바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 으로서의 구속 사역을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최종 성취하신 예수께서 이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앞에서 제시한 그의 신성과 구주이심에 대한 모든 증거들의 진정성이 입증되었음을 밝힌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가 죄와 사망의 권세까지도 깨뜨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끝으로 본문\은 예수께서는 이제 부활의 표적,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하는 지상 최대 최후의 표적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지상 대명과 목양의 사명을 주신 사실을 보도하면서 마감한다.
6. 개 요
제1부 : 제2위 성자의 성육신 / 1:1-18
초월적 신성을 가진 예수의 선재 / 1:1-5
예수의 선구자 세례 요한 / 1:6-8
참 빛이신 예수에 대한 세상의 배척 / 1:9-11
성도의 예수 영접 / 1:12, 13
예수의 성육신 / 1:14-18
제2부 : 성자 예수의 표적과 선언들 / 1:19-12:50
선구자 세례 요한의 증거 / 1:19-34
예수의 처음 제자들 / 1:35-51
가나의 혼인 잔치 / 2:1-12
초기 유대 사역 / 2:13-3:36
사마리아 사역 / 4:1-42
갈릴리 사역 / 4:43-54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 5:1-47
갈릴리에서의 배척 / 6:1-71
초막절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 7:1-10:21
수전절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 10:22-42
베다니에서의 배척 / 11:1-12:11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 12:12-50
제3부 : 성자 예수의 교훈 / 13:1-17:26
마가의 다락방에서 / 13:1-14:31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는 도중에서 / 15:1-18:26
제4부 : 성자 예수의 수난과 부활 / 18:1-21:25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 / 18:1-19:16
예수의 십자가 고난 / 19:17-37
예수의 장례 / 19:38-42
예수의 부활 / 20:1-10
부활하신 예수의 출현 / 20:11-21:25
참고도서
노만페린·데니스 C.덜링,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상, 박익수 역
성종현, 바울서신 해설대조연구
에두아르트 로제, 신약성서 배경사, 박창건 옮김
제자원, 그랜드 종합주석
조경철, 신약성서가 한눈에 보인다
유태엽, 복음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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