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스라엘?
성서적 이스라엘!
1. 들어가는 말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경의 이야기가 전혀 역사성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역사성을 증명하기 위해 창조과학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양 극단적인 주장은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에선 노아의 홍수가 고대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을 차용했다고 주장한다. 노아의 홍수 사건이 이스라엘만의 사건이 아니라, 고대에서 널리 퍼지고 있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도리어 길가메시 서사시가 성서의 이야기를 차용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들은 성서의 무오성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을 일정 부분 차용했다거나 하는 일들은 성서의 무오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리포트를 통해서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를 가려내지 않겠다. 이미 많은 논문들과 주장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두 가지 관점에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바라보고자 한다. 먼저는 <역사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로 길가메쉬 서사시와 창세기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공통점에 대해 살펴보고, <성서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로 차이점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 론
1) 길가메쉬 서사시란?
1848-1849년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있는 모술, 성서에서 말하는 니느웨에서 약 6인치 높이의 점토판들을 발굴했다. 거기에는 아수르바니판 (BC 668-626년) 치세 중 인기를 끌었던 길가메시 서사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 대부분은 주전 2천 년대의 초반에 쓰여졌다. 총 10-12개의 점토판에 각각 300행의 아카드어 쐐기문자로 기록되었는데, 그중 홍수 이야기는 고대 바벨론의 홍수 설화인 아트라하시스 신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2) <역사적>이스라엘?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 노아의 홍수와의 공통점
(1) 주인공 :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홍수 부분의 주인공은 우트나피슈팀이고, 성서의 홍수 본문의 주인공은 노아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신 앞에 경건하여 신으로부터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특별한 은총 가운데 홍수를 뚫고 목숨을 부지할 뿐 아니라 홍수 후에 다시 세대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2) 홍수의 전개와 마무리 : 전개상의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사건의 기본 틀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11토판) | 기본구조 | 창세기 |
8-9행 | 홍수의 결정 | 6:5-12 |
20-31행 | 홍수 심판 예고 | 6:13, 17-21 |
32-76행 | 방주의 건축 | 6:14-16, 22 |
77-85행 | 승선 | 7:1-9 |
86-144행 | 홍수 | 7:10-8:5 |
145-154행 | 새를 날려 보냄 | 8:6-12 |
155-188행 | 희생제사 | 8:13-22 |
189-196행 | 축복, 언약 | 9:1-7 |
(3) 생존자 : 길가메시 서사시나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 모두, 홍수를 통과하여 생존해서 다시 인류를 이 땅에 번성하게 하고 중요한 지식을 전해내린 사람은 소수이다.
(4) 심판에 대한 신들의 반응 :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타난 신들은 아주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홍수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신들이 슬퍼하며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1 토판 124-125행) 노아 이야기의 야훼도 마찬가지이다. 홍수 후에 야훼는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다는 이야기(8:1),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의 약속(9:13) 등이 근거 본문이다.
3) <성서적> 이스라엘!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 노아의 홍수와의 차이점
(1) 주인공 :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주인공인 우트나피슈팀과 그 아내는, 홍수가 끝난 후에 엔릴이라는 신에게 복을 받아 영생불사의 신이 된다. 그러나 성서 홍수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아는 홍수 후에도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고 노아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2) 홍수의 주체와 원인
구분 | 길가메쉬 서사시 | 창세기 노아의 홍수 |
주체 | 많은 신들이 있음 | 유일신 야훼 |
원인 | 인간이 땅에 번성하면서 만들어 내는 소음이 커서, 후에 최고신이 되는 엔릴이 불안감과 불면증에 빠지게 되어 화가 나서 신들을 소집한다. | 사람들의 행위가 악해져 가고 땅위에 죄악이 가득함을 본 야훼가 땅에 사람 지음을 한탄한다. |
(3) 문학적 구조 : 성서의 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히브리 문학의 특수한 표현법인 교차대구법(chiasmus)이 사용되어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강조된다.
이행적인 서론 6:9-10
(1) 피조 세계의 패괴함 6:11-12
(2)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 : 심판 결심 6:3-22
(3)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 : 방주 승선 명령 7:1-10
(4) 홍수의 시작 7:11-16
(5) 홍수의 증가 7:17-24
X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심 8:1
(5) 홍수의 감소 8:2-5
(4) 홍수의 끝 : 지면이 드러남 8:6-14
(3) 하나님의 세 번째 말씀 : 방주 하선 명령 8:15-19
(2) 하나님의 네 번째 말씀(독백) : 질서 보존 결심 8:20-22
(1) 피조 세계의 회복 선어 9:1-7
이행적인 결론 9:18-19
(4) 홍수 고지와 대비 : 성서에서는 야훼가 직접적으로 노아에게 홍수에 대해서 알려 준다. 또한 방주의 재료, 크기, 건조법, 동승할 사람과 짐승의 종류와 수, 홍수의 기간 등을 세세하게 지시한다. 노아는 이러한 야훼의 지시에 따른다.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이런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차이점들이 있다. 우선 에아 신이 우트나피슈팀에게 홍수 계획을 알려주지만 꿈속에서 알려준다.(G 187) 방주를 짓는 것도 어린아이와 힘 있는 자들 들 여럿과 함께 했고(G 54,55) 자기 나름대로 설계하고 만든다.
(5) 심판에 대한 신들의 반응 : 앞의 공통점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공통적으로 신들은 슬퍼한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는데, 길가메시 서사시의 신들은 폭풍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그것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개들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반응은“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자마자 그 물이 줄어들었다.” 야훼의 전능하심과 지배가 다시 한 번 증명된 것이다.
(6) 홍수 이야기의 마지막 : 홍수가 끝나고 우트나피슈팀은 방주에서 내려, 같이 탔던 짐승들을 사방에 풀어주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술을 땅에 쏟았다. “희생 제사 주위에 파리 떼처럼 모여든”신들이라고 묘사한다. 그 신들은 제물을 바칠 사람들이 없는 동안에는 굶주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노아의 이야기에서는 좀 다르다. 성경의 노아는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물이 감하자 야훼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하시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노아도 방주에서 내려 제사를 드렸지만 길가메쉬 서사시에서와 같이 술을 쏟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정결한 짐승들 중에서와 정결한 제물 중에서 가려 뽑아서 야훼께 번제를 올렸다.(창 8:20)
3. 나가는 말 : 역사적 이스라엘? 성서적 이스라엘!
지금까지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비교해 보았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두고 축소론자, 확대론자 등 여러 목소리들이 많다. 나는 이번 페이퍼를 맺으면서 어느 학자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역사적 이스라엘만을 생각했을 때 일어나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역사성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역사성이 곧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도식 때문에 역사성을 훼손하는 어떤 증거나 역사도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도식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역사와는 상이한 부분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적 이스라엘을 넘은 <성서적 이스라엘>을 말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성서적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금 살펴보았던 길가메쉬 서사시와 노아의 홍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이 먼저 기록되었는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똑같은 상황에서의 이스라엘의 고백인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와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공통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성을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사성 안에서만 옳고 그름을, 먼저와 나중을 따진다면 한계에 부딪힌다.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통점도 많았지만 분명히 다른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백>인 것이다. <성서적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겠다. 만장일치도 되지 않은 여러 신들의 회의에 의한 것이 아닌, 유일신 야훼의 결정! 자신의 판단과 계산으로 만든 방주가 아닌, 야훼께서 재료와 규격까지도 세세히 알려주신 방주! 바로 이스라엘의 야훼에 대한 고백이 담긴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도리어 문제가 될 것 같았던 공통점들은 더욱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는 배경이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성이 <성서적 이스라엘>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상황과 일들을 겪지만 전혀 다른 고백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다. 약점이 될 것 같았던 세상 사람들과 같은 내 본성은, 고백을 빛나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역사적 이스라엘을 넘은 성서적 이스라엘!
이번 리포트를 통해 얻게 된 귀한 깨달음이다.
참고문헌
1. 천사무엘,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념 기념 성서주석 : 창세기1』, 대한기독교서회, 2001
2. Wenham, Gordon J 저, 『창세기 1』, 박영호 옮김, 솔로몬, 2001
3. 강성열, 『고대근동 세계와 이스라엘 종교』, 한들 출판사, 2003
4. 김산해,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2006
5. 유진 피터슨, 『메시지 : 모세오경』, 복 있는 사람, 2011
6. 최요한, “길가메쉬 서사시와 성서 노아 홍수 기록 비교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7. 김학성, “창세기 홍수 기사와 고대 근동문헌의 비교 연구”, 안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8. Tsukimoto Akio, “길가메쉬 서사시의 현대적 의의”, 2012년 5월 16일 강연 자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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