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패러다임 독서 과제>
결명자(決明子) : 눈을 밝게 하는 효능이 있음
머리말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를 보는 눈이라 할 수 있다.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설교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이고, 설교자는 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성서를 해석하고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선포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설교자가 성서를 보는 눈이 흐릿하다면 그에게 말씀을 듣는 회중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함께 시력이 나빠지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주석 수업의 목표는 바로 ‘시력 찾기’라고 할 수 있겠다. 눈이 나빠 보지 못했던 성서의 참 진리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번 수업이 나에게는 <결명자>와 같길 바란다. 먹으면 먹을수록 눈이 좋아지는 결명자처럼 들으면 들을수록 성서를 보는 시각과 사고가 또렷해지고 분명해지길 소망한다.
몸 말
1. 온고지신 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그것에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 <142-168p>
오늘날에는 인터넷 때문에 다른 교회 어느 목사님의 설교라도 클릭 한 번에 들을 수 있다. 나는 종종 다른 교회 설교를 들어보려고 검색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한 가지가 있는데 “구약 설교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신약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시지 구약의 본문으로는 거의 설교를 하지 않는다. 나와 봤자 구약의 본문을 잠깐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다. 꼭 구약은 신약을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로 비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하지만 왕대일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눈이 맑아짐을 느꼈다. 내가 이제까지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 왕대일 교수는 구약과 신약을 서로 보충하는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언약서는 각각 상호간을 보충하거나 수정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개의 언약서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약에는 창조가 신약에는 새 창조가 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창조만 있어서도 안 되고, 새 창조만 있어서도 안 된다. 창조에서 새 창조로 새 창조에서 완전한 창조의 회복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옛말에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익이고 그것에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무엇 하나가 주가 된다면 균형이 없어진다. 구약을 신약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나 신약이 있으므로 전혀 쓸모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진정한 새 창조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반드시 구약의 눈으로 신약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신약의 눈으로 구약을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 새 창조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 밝혔던 바와 같이 성서를 바라보는 눈이 좀 더 밝고 명확해진 기분이다. 구약과 신약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었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제 다음으로는 해석학의 관점에서 좀 더 밝은 눈을 가지려고 한다.
2. 돋보기 착용하기 : 밝게 그리고 또렷하게 보기 <116-141p, 67-90p>
말씀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생명력이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사 40:8)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앞에서 말한 힘과 생명력, 그리고 영원함이 없는 듯하다. 각각의 문제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게 해석되고, 이런 경우엔 이렇게 해석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해석되는 것이 융통성이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영원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속성과는 뭔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성서 속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성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서를 해석하는 설교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의 역사 가운데 동일했고 그 말씀은 언제나 시대를 깨우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감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럼 설교자의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에서는 이제까지 성서를 해석했던 방식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크게 3가지로 나누는데 알레고리, 타입폴로지, 아날로지가 있다. 짧게 특징들을 말하면 알레고리는 구약의 문자나 사건 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삶, 죽으심, 부활에 상응하는 상징으로 바라봄을 뜻한다.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에 맞추기 때문에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은 자칫 자의적인 해석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다음으로 타입폴로지는 구약과 신약에 있었던 사실들 사이의 상호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의 방법론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알레고리는 지나치게 구약을 신약의 빛에서 해석했기 때문에 구약 자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기보다는 재해석된 하나님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구약이 옛 언약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이런 사고 안에서는 구약은 언제나 신약으로 가는 다리 역할로만 제한되기 때문에 구약에서 나타난 크신 하나님을 제한하는 오류가 있다. 다음으로 타입폴로지이다. 타입폴로지는 신약이 구약의 완성이고 구약은 신약의 “예표”라는 이해를 전제로 삼는다. 바로 신약에 나오는 사건은 원형이고, 구약에 나오는 그의 상응하는 사건은 모두 모형이라고 전제한다. 이 역시 구약의 참 의미를 보여주는 데는 부족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날로지’이다. 알레고리와 타입폴로지의 단점을 극복한 이 아날로지는 성서의 말씀을 들었던 그때의<상황>과 성서의 말씀을 듣고 있는 오늘의 <상황> 사이의 비슷함과 비슷하지 않음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의 비교>에서 옛 이스라엘에게 선포되었던 구약의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밝히 그리고 또렷이 볼 수 있는 해석학적 돋보기를 착용했다. 그것은 본문의 상황과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만나게 하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설교자는 누구보다 이 돋보기를 잘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많은 회중에게 돋보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부름 받았다.
나가는 말
첫 수업에 교수님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주석은 본문과 뜨겁게 만나는 것이다.”이 말이 참으로 옳다. 먼저 우리는 본문과 만나야 한다. 성서의 본문이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뜨겁게’만나야 한다. 이 뜨겁게라는 말은 그냥 그렇게 미지근하게 만나라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애쓰고 수고한 노력이 있을 때, 그리고 성령님의 일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내어드릴 때 ‘뜨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레포트의 제목처럼 앞으로의 수업이 성서를 보는 내 눈이 밝아지고 또렷해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바라기는 이 시대를 깨우는 설교자가 이 수업을 통해 나타나고 길러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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