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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종교

로버트 반디, 초대교부들의 영성 사랑과 기도, 컨콜디아사, 2004

by 보통목사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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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기도를 통해서 본> 

사랑의 실천 <기도>, 기도의 완성 <사랑>

그 사랑의 결과 <화해>  

 

 

 

들어가는 말 

   이후정 교수님과 함께하는 <초대수도원운동>세미나는 매주의 수업이 도전의 연속이다. 초대교부들의 영성과 신학, 그리고 삶을 통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만 교부들의 삶과 내 삶에는 길고 긴 간격이 있다. 그래서 매번의 수업이 도전이고 찔림이다. 나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꽤나 비장했다. 초대 교부들만큼은 아니어도, 매일 하나님을 생각하려고 했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무식하리만큼 지켜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15분 이상씩은 기도했었다. 과제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깨면 잠이 깨는 한이 있어도 기도는 꼭 하고 잤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한 해, 두 해를 지내면서 <사람이 뭐 어쩔 수 없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까>라는 말로 타협에 들어간 내 삶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고 있었다. 이런 나태해진 내 영성에 찔림을 준 수업이 바로 <초대수도원운동 세미나>이다. 나는 특히 이번 로버트 반디의 <사랑과 기도>를 읽으면서 내 삶에서 무너졌던 영성들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리포트를 세 개의 주제로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는 사랑의 실천 기도, 두 번째는 기도의 완성 사랑, 마지막은 그 사랑의 결과 화해이다. 책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중간에 내 코멘트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하겠다. 이 페이퍼를 통해서 다시 내 삶에 사랑과 기도, 그리고 화해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본 론 

 

1. 들어가기에 앞서 : 수도생활의 시작과 초대 수도원의 사랑과 기도    

   기도에 대한 많은 정의들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신의 기도에 대한 확인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도원 스승들로부터 기도는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상호 운동이며,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과 우리의 계속적인 응답 사이의 교통을 이루는 상호 운동임을 배우게 되었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통보나 지시가 아닌 서로 간의 상호 운동인 것이다. 초대 기독인들은 우리에게 비범하게 보이는, 등이 오싹할 만큼 훈련을 강조하였다. 

 

  1) 수도 생활의 시작 

초대의 수도원 스승들의 사랑과 기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예화가 이 책 28페이지에 나온다. 가자의 도로테오스가 그들의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가 컴퍼스를 가지고 한 점을 찍고 둥근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라. 중심점은 그 원주의 어느 점에서나 같은 거리가 된다… 이원이 세상이고 하나님이 중심이라고 생각해 보자. 도 원둘레로부터 중심으로 긍지는 직선들은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해 보자…그러나 동시, 그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며, 그들이 서로 더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참 많은 깨달음을 준다. 수도원 정신의 출발과 끝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초대의 수도원 스승들에게서, 사랑은 기독교적 삶의 출발점, 목표 및 내용인 것과 마찬지로, 기독교적 삶의 핵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수도원 운동의 시작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안토니를 통해서 시작되었고, 파코미우스를 통해서 더 고도로 조직된 공동체가 생기게 되었다. 

  2) 초대 수도원 기도의 형태 

그들은 기도를 그들의 삶의 근본적인 행위로써 너무도 당연시했다. 

  3) 기도에 관한 초기 문헌 

다른 여러 초대 수도원 문헌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사막교부들의 금언』집록이다. 이 금언집이야말로 사랑과 기도에 관한 실제의 자료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이 책이 다루게 되는 사랑과 기도에 관한 배경과 문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기도에 관한 배경은 초대수도원 운동이며, 근거가 되는 문헌은 『사막교부들의 금언』집록이 된다. 그럼 본격적으로 초대교부들이 말하는 사랑과 기도는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2. 사랑의 실천 <기도> 

   기도의 삶의 출발점은, 아무리 희미하게라도, 우리가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고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즉 “너희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기도의 삶의 최종 목표이며, 사랑하는 것과 그 방법을 배우는 것은 기도의 매일의 일이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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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욕을 버리고 덕을 쌓음 

초대 수도원의 수행과 기도는 정욕을 버리고 덕을 쌓음에 있다. 먼저 정욕을 버리는 것은, 정욕들에 항거하여 싸우고 하나님과 서로의 도움을 받아 치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우리가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들어진 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욕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덕을 쌓는 일도 필요하다. 도로테오스의 원의 은유처럼, 또한 그 안에서 어떻게 인간 존재들이 서로와 하나님에게 관계되는지가 보여주듯이 덕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계되는 것이다. 한 압바의 말대로, “덕은… 하나님께로 이끌고 우리를 서로 연합시킨다.” 

  2) 기도에 이르는 길 

기도의 정도는 없다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기도하고 있다면, 이미 “올바로 하고”있는 것이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하는 법을 배워야 할 어떤 것인 동시에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사이다. 기도하는 시간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사랑을 깊이 할수록 생산적인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처럼, 기도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느끼기에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정함이 강렬함이나 길이보다 더 기도를 지탱해 준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도를 해도 뭔가 변화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매일 아침 혹은 매일 저녁 드리는 기도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더 깊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뜻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내게 충격이었고, 깨달음을 주었다. 

또한 기도 중에 경험하는 모든 종교적 체험을 불신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필자의 주장이라기보다는 『금언집』중에 가득히 나오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의 맹신을 통한 염려는, 그 체험이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를 특수한 계시를 위해 분리시켜서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며 더 이상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믿도록 권장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기를 배우고 있는 하나님과 일상적인, 심지어 단조롭게 거듭되는 평범한 방식으로,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기도는 생명을 위한 것이다. 기도는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한다. 기도는 사랑의 정황을 제공하며, 사랑을 가능하게 해 준다.

 

   지금까지 사랑의 실천인 기도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랑은 단순히 사랑 자체로 끝날 수 없다. 반드시 수반되는 행동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들이 우리 삶에 일어날 때, 그 기도는 더욱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한다. 사랑의 실천이 기도라고 생각해 본다면,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내 사랑의 감정은 단순히 사랑에 대한 감정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참 사랑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의 실천인 기도가 함께 가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도의 완성 사랑에 대해 알아보겠다. 

 

3. 기도의 완성 <사랑>  

   광야의 압바들과 암마들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기독교적 기도생활의 출발점일 뿐만 목표라는 것을 확신했다. 

 

  1) 사랑의 출발점 : 참 자아 

초대 수도원적 견지에서, 자아 없이 살려고 애쓰는 것은 정욕이다. 참 자아를 막는 장애물로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먼저는 인정의 욕구이다. 우리 자신의 궁극적인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데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을 잃게 된다. 둘째로, 완전주의이다. 완전주의의 정욕은 우리의 참된 가치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바와 어떻게 그것을 행하는 지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의 공로로 얻어야만 한다는 신념에서 유래된다. 금욕 훈련들의 요점은 구원을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증가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희생자로 명명하는 것 또한 정욕이라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참 자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다음은 『마카리우스의 설교』중의 내용이다. 

이처럼 사람이 내키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들을 언젠가는 기꺼이, 자신을 항상 선에 익숙하게 만들며 주를 기억하고 그를 항상 큰 사랑 속에서 기다리면서,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은 『금언집』에서 안토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형제가 압바 안토니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그에게 말했다. “만일 네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게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이실 것이다.” 

셋째는 성경이다. 만일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매일 성경을 기도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자아를 누리는 것에 관하여 가르침을 주게 될 것이다. 넷째는 기도와 더불어 일관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2) 목표는 사랑이다 

이 모든 것의 목표는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참 자아를 찾아가는 목표도, 기도의 목표도 사랑인 것이다. 기도의 완성이 사랑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3) 이웃 사랑 

압바 안토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생사는 우리의 이웃과 함께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얻으면 하나님을 얻는 것이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욕되게 하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범죄 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요구로부터 우리를 독립시킬 하나의 자기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찾는 것이다. 이후에는 이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덕목들이 열거된다. 기도, 겸손, 분별, 자문,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 용서 등이 있는데 여러 덕목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언급한 기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다. 압바 아가톤의 말이다. 

“모든 선행 중에서 가장 큰 노력을 요하는 덕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용서하게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노동은 없다네.” 

우리의 공동체들 속에서 계속적인 기도의 움직임은 서로 및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시는 세상에 대한 사랑 속에서 우리의 삶이 성장하는 데 근본적인 것이다. 

  4) 하나님 사랑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셔서 그 안에 살게 하신 바로 이 세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나님 안에 살게 하신 바로 이 세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나님과의 벗 됨 속에서 사는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즐거움이 된다. 즐거움이 기도의 목표이다. 즐거움은 사랑하는 자로 하여금 사랑받는 자를 위해 엄청나게 열렬히 희생하도록 만든다. 하나님 자신의 무시무시한 고통의 요인이 된 십자가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과의 벗 됨을 통해서 벗 됨의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과의 벗 됨은 결국에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벗 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완성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그 예로 성경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 사건에 대해서 말한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려 했지만 모세의 간구로 마음을 돌이키신다.) 사랑의 완성은 기도인 것이다. 

 

4. 그 사랑의 결과 <화해> 

   지금까지 우리는 사랑과 기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어느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살펴보았다. 사랑한다면 기도해야 하고, 기도한다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통해서 완성된 사랑의 결과인 <화해>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기도의 삶,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자라나서 전체가 불꽃으로 화하는 것은 그 속에서 우리가 부활의 권능 안에서 사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활의 권능은 단순히 개인적인 은사도 아니며 교회를 위한 은사만도 아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하나 됨과 평화 속에서 변화되고 화해됨이다. 우리의 기도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우리가 어디에 어떤 존재로 있어왔으며 현재 어디 있든지 간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기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해, 세상과의 화해, 모든 피조물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가는 말 

   모처럼 뜨거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나의 차가워진 영성에 불을 지펴주었을 뿐 아니라, 내 안에 잘못 정립되었던 기도와 사랑의 개념들을 다시 바로 잡아 주었다. 사랑과 기도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데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는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 없는 기도는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기도 없는 사랑은 공허함만을 남길뿐이다.      또한 이러한 기도와 사랑의 결과가 화해로 나타난다는 것은 내게 큰 도전을 주었다. 분열된 감리교의 현실을 바라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감리교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삶의 영역에서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들을 살펴보아도 화해하지 않은 상태가 많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과 기도의 결과가 화해라면 내 삶 속에는 아직 진정한 사랑과 기도가 실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대교부들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기도하려고 하는 실천이 없었던 내 모습, 기도하는 모양은 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내 삶에서 기도의 일상성을 다시 회복하기를 말이다. 잊어버렸던 첫 마음을 일깨워주고, 나를 다시 기도의 자리로 옮겨준 『사랑과 기도』는 앞으로 평생 읽고 또 읽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사랑과 기도가 <화해>의 발판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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